짐 좀 내려놓아요
짐 좀 내려놓아요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10.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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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인간에게는 크게 세 가지의 짐이 있습니다.

첫째 몸으로 지는 짐입니다. 손에 들거나, 등에 메거나, 온몸으로 밀거나 끌어야 하는 물질적인 짐 이른바 유형의 짐입니다.

크기도, 무게도, 수량도, 가치도 다른 다양한 짐들을 지고 삽니다.

둘째는 마음으로 지는 짐입니다. 맡겨진 임무나 책임 또는 수고로움이 수반되는 비물질적인 짐 이른바 무형의 짐입니다.

나이와 역할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숱한 고난의 짐들을 지고 삽니다.

셋째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는 짐입니다. 생로병사와 같은 원초적인 짐과 살면서 지은 수많은 죄와 업보인 이른바 영적인 짐입니다.

자신과 조물주만 아는 깊고 푸른 무거운 짐들을 평생 지고 삽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짐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빈자는 빈자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민초들은 민초대로 다들 한 짐 가득 지고 삽니다. 짊어진 짐의 무게와 크기와 형태가 다를 뿐 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짐들이 인간의 행불을 좌우합니다. 잘 지면 성공과 행복이 찾아오고, 못 지면 실패와 불행이 찾아옵니다.

짊어진 짐을 멍에라고 여기면 고통의 짐이 되고, 짊어진 짐을 축복이라 여기면 기쁨의 짐이 됩니다.

살다 보면 등산갈 때 메는 배낭처럼 유익한 짐도 있습니다.

넘어질 때 허리 보호도 해주고 등정을 마칠 때까지 필요한 음식과 장비들을 풀어놓으니까요.

그러나 배낭에는 등정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싣되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실어야 합니다.

짐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견디기 힘든 짐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 짐입니다.

가족과 연인,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상사와 동료, 이웃과 친지들과의 관계의 짐, 필자는 이를 인연의 짐이라 부릅니다.

인연엔 필연도 있고 우연도 있고 운명적인 만남도 있습니다.

모든 인연에는 책임과 의무라는 관계의 짐이 생깁니다.

신의성실로 꾸려지는 짐을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인연이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족쇄가 되는 인연, 그 인연에 균열이 생기면 불행이 싹틉니다.

행복하려면, 불행하지 않으려면 맺은 인연을 연인 대하듯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함께 질 수 있는 짐이 있고, 숙명처럼 혼자 짊어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무겁고 힘든 짐도 맞들면 가벼워집니다. 함께 지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위안이 됩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위기 때 달려와 거들어줄 우인이 지근거리에 있는 이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도 거들어주지 않는 혼자만이 짊어지는 짐이 있습니다.

비우고 버려야만 가벼워지는 짐 말입니다. 짐이 주체할 수 없이 무거워지기 전에 비우고 버려야 피안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욕망의 짐, 미움의 짐, 분노의 짐, 집착의 짐들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의 짐이 있습니다. 이 무거운 짐도 참회하고 회개하면 가벼워집니다. 죄 사함도 받을 수 있습니다.

연약하고 병든 몸이 짐이 되고, 소유한 재산과 부질없는 욕심이 짐이 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空手來空手去) 인생입니다.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예수님이 손짓하십니다.

미련 때문에ㆍ아까워서ㆍ무서워서ㆍ혹시나 해서 붙들고 사는 짐들, 컴퓨터저장파일 비우듯ㆍ이사할 때 세간사리 버리듯 과감하게 비우고 버려야 합니다.

비우고 버리면 생명이 되고 평화가 되는 짐, 그 짐 좀 내려놓아요.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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