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10.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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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잘 모른다. 감히 나 같은 속세의 사람이 성역에 계신 분을 말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남들도 알 듯이 그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것, 철도 노동자 집안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파격행보로 언론에 상당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쯤은 머릿속에 있었다.

가톨릭 인구가 13억 정도이니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데, 그쪽 고위성직자들은 변방의 미천한 성직자를 과감하게 그들의 수장으로 뽑아놓았다. 덕분에 변화되는 것이 꽤 있는 모양이다. 한 사람만 나오는 주간잡지(Il mio Papa: 우리 아빠)도 그 덕분에 생겼다니 참으로 재밌는 현상이다.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황들은 늘 상징적인 만큼 은유적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겉만큼 속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에 뽀뽀를 하건, 거지의 발을 씻기건, 아이를 안던 그것은 교황청의 계획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그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도 난 시큰둥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권에서는 어느 나라보다도 헌금을 많이 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정도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평소 기독교 전래사에 관심이 많은 나이기에 그가 충남 해미를 간다거나 하는 것이 별로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행여 충북의 연풍이나 제천 배론성지, 진천 배티성지를 모두 아우른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알다시피 그리스도교 전래사는 곧 서구문명의 동양진입과정이고 이질적인 문화가 동화되는 과정이라서 나는 늘 종교의 충돌과 화해의 정치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교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은 그가 한국을 떠나면서였다. 비행기 안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세월호 노란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이가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 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키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방한 기간 내내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도 리본을 달고 있었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고통 앞에 중립 없다.’ 교황은 그 명제를 삶의 화두로 갖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종교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장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바퀴 자국 속에 잠긴 물고기가 거품을 내뿜자 지나가던 사람이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서강의 물을 옮겨다 줄 테니.’ 물고기에게 필요한 것은 물 한 바가지인데, 이분 참 기가 막히다. 운하를 파서 가도록 해주겠다니 말이다. 나는 여기서 ‘당장의 동정심’을 배웠다. 이상적이고 완벽한 복지도 좋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내 눈앞에서 아파하는 이에 대한 관심이다.

콜롬비아 내전이 종식된다. 1964년부터 시작되어 30만이 죽거나 사라진 50여년의 전쟁에 양측이 평화협정에 합의했다. 전 정부 쪽에서는 살인자들과 타협한다고 반대한단다. 그들을 인정하면 여태껏 싸운 것이 뭐가 되냐는 논리일 것이다. 원한도 많고 상처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숨은 공헌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알려졌다. 2015년 쿠바에 갔을 때 양측에 압박을 했단다. 가톨릭 국가가 대부분인 남미에서, 그것도 아르헨티나 노동자 집안 출신이, 그리고 늘 가난한 자의 편에 섰던 교황이었기 때문에 말이 먹히지 않았나 싶다. 교황이 유엔 사무총장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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