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런 2016 천안 ‘능소전’
실망스런 2016 천안 ‘능소전’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6.10.04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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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내포)

이야기는 흐름이 중요하다. 도입부에서 이목을 끌고, 매끄런 전개로 빨려들게 하다가 반전으로 흥을 돋아, 인상적 마감으로 감동을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천안흥타령춤축제(9월 28일~10월 2일)의 마당극 ‘능소전’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개인적으로 매년 봐 왔던 능소전 중 최악이었다. 능소전의 발전적 진화를 기대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무대 첫머리부터 불길한 징후가 포착됐다. 젊은 고전 무용수가 혼자 흥타령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왜 나왔는지 의아했다. 이번엔 연배 지극한 여성 무용인이 굿춤을 선보였다. 도대체 왜 능소전에 이런 개인무가 잇따라 등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어 세 번째, 역시 나이 든 여가수가 홀로 나와 흘러간 옛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능소전 서두는 개인 무용수와 가수의 리사이틀로 꾸며졌다.

1980년대 창작된 능소전은 천안삼거리 주막에 맡겨진 능소가 한양에 과거 보러 가던 선비를 만나 사랑을 하고, 이후 장원급제한 선비와 백년해로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춘향전과 흡사하다. 배경이 남원이 아니라 천안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능소전은 흥타령춤축제 주제를 전하는 핵심요소임에 틀림없다. 이런 능소전을 올해는 태권도 격파술 등이 극 흐름을 ‘뽀개 놓고’ 있었다.

지난해(상명대 연극학과)와 달리 올해는 한국연극협회 천안지부가 능소전을 맡았다. 천안연극협회는 작품 소개 팸플릿에서 “기존 퓨전타입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능소전의 틀을 벗기고 수십 년 만에 우리의 전통적인 능소이야기로 회귀한다”면서 “오리지널 능소전의 정통성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정통성 있는 천안삼거리 설화가 뭔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야기의 진화가 있을 뿐이다. 변하지 않은 고전은 없다. 시대와 생활상의 변화에 따라 스토리는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능소전은 전통성을 살린다면서 이야기 뼈대만 그대로 놓고, 극 구성에선 색다른 시도를 했다. 그런데 그 시도가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권진사역의 채필병씨, 품바역의 이계준씨 연기는 그 연륜이 느껴졌지만, 그들의 농익은 연기가 극 사이로 파고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젊은 연기자들과의 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스토리 해설사역 ‘노()신사’의 잦은 출연도 어색했다.

결정적으로 이야기 흐름을 끊은 건 무사들의 태권도 대련 및 격파시범이었다. 관객들 시선끌기에선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난데없는 등장이었다. 변방 군역을 떠난 능소 아버지가 현대 군복을 입고 무사들을 태권도를 지휘하는 설정 자체가 코믹스러웠다.

연이은 노년 무용수와 가수의 막판 출연도 정말 생뚱맞았다. 관객을 썰렁한 분위기로 몰아넣은 개인무에 이어, 흘러간 옛노래 ‘하숙생’이 불리워졌다. 능소전이 이 춤ㆍ트롯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며칠 전 공주 백제문화제에서 본 실경(實景)뮤지컬 웅진판타지아 ‘무령’을 떠올리니 너무 대비됐다. 무령은 스토리 전개가 무난했고 금강 위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돛단배를 띄워 만삭의 여인(무령왕 모친)을 등장시키는 장면은 정말 실감 났다. 또 초등학생이 출연한 ‘씨 뿌려라’ 장면은 아이들의 자연스런 연기가 산뜻했다.

반면 올해 능소전은 천안을 찾은 외지 관광객에게 보여 줄만 한 것이 못 됐다. 천안삼거리의 특성과 스토리를 제대로 전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액션감이 넘치는 격파술과 품바의 입담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훔치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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