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없다
김영란법은 없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10.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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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신문과 방송이 앞 다퉈 ‘불안’을 말한다. 현장 르포 형식을 차용해 유흥가와 식당가의 불금이거나 휴일 표정을 낱낱이 훑어 댄다.

통계 수치를 동원해 위기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보도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법 시행 이후 법인카드를 사용한 밥값과 술값의 계산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인데, 빅데이터를 이용한 요식·주점업종의 카드 이용 패턴을 분석했다는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기도 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밥값의 법인카드 결제 이용액이 8.9%, 주점업종의 경우 9.2%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주말 예식장은 축하 화환이 크게 줄어든 데다 썰렁한 모습임을 사진과 함께 보도하는 친절을 아끼지 않는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식당 등 ‘서비스업종의 고용 퇴출’이거나 ‘서민 일자리 직격탄’이라는 위기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보도 행태는 보수매체는 물론 진보성향을 자처하는 언론 또한 빠짐없이 다루고 있어 가히 급변하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급기야 이시종 충북도지사까지 나서 서민경제 위축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법의 대폭 개정을 촉구하는 지경이다.

역설하면 ‘접대용’이 이토록 처절하게 사회와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는 허점을 드러낸 것인데 이쯤 되면 이러한 일련의 반응이 과연 사회적 ‘불안’인지, 그동안 혜택을 누려왔던 소위 그들만의 ‘불만’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5000만의 인구 가운데 김영란법의 직·간접적 대상은 400만명에 달할 것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추산하고 있는데 그런 잣대를 보면 그들이 그동안 사회와 경제를 좌지우지 해왔다는 허약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과학적 분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김영란법은 없다.

누차 밝혔듯이 이 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약칭은 ‘청탁금지법’이니 (공직자 등의)‘부정한’ 청탁만을 금지한 법임에도 세상이 이처럼 떨고 있다.

뇌물을 주고 받거나 편법을 쓰지 말고 (공직자와 언론인 등의)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함으로써 공공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급기야 서민 경제의 파탄이나 생존권 위협으로 치닫고 있음을 내세우는 보도현상은 협박이며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탐욕에 그 근본이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세상에 김영란법이라는 건 없다. 전직 여성 대법관의 이름이 가볍기 그지없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뿌리박은 여성성에 대한 폄하가 작용되는 음모와 저의 또한 숨기지 못하는 것 아닌가.

헌법기관을 비롯해 공직사회, 언론계, 교육계, 의료계를 포함한 권력과 재력을 가진자들의 농단이 ‘부정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서민 경제의 파탄이거나 생존권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표현은 그만큼 그동안의 우리 사회가 불평등과 부정이 지배하는 반칙의 세상이거나 구조의 형편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법 집행과 직무수행, 그리고 그런 밝고 맑은 세상에서 우러나오는 국민의 신뢰가 그렇게 어려운가.

가볍게 김영란법이라 부르지 말라. 신중하고 철저하지 않으면 ‘부정’과 ‘청탁’이 사라지는 개벽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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