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학
그림 속의 학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10.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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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학은 자연계에 실재하는 새임에도 불구하고 옛 사람들은 이 새를 신비스럽고 영적인 존재로 인식하였다. 은하수까지 날아오른다거나, 1600년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거나, 암수가 마주 보아 잉태한다고 여겼던 것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선이 타고 하늘로 간 새이기도 하고, 십장생에 포함된 유일한 날짐승이기도 하고, 외진 곳에서 조용히 은거하면서 고답을 추구하는 선비를 닮았다고 하기도 하는 새가 바로 학이다.

그래서 학은 옛 그림과 문양에 무수히 등장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달(李達)도 어느 그림 속에서 학을 보게 되었다.

 

그림속의 학(畵鶴)

獨鶴望遙空(독학망요공) : 외로운 학이 먼 하늘 바라보며,
夜寒擧一足(야한거일족) :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
西風苦竹叢(서풍고죽총) : 가을바람에 대나무 숲 살이 고달프고
滿身秋露滴(만신추로적) : 온몸으로 가득 가을 이슬 떨어지네.

 

학은 기러기처럼 수십마리가 무리지어 날거나 하지 않는다. 보통 서너 마리가 함께 가족 단위로 서식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인이 보고 있는 그림 속의 학은 혼자만 떨어져 있다.

흔히 학은 고고한 기품의 선비를 상징할 만큼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림 속의 학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자발적으로 은거하며 혼자서 유유자적의 생활을 영위하는 현자(賢者)의 모습보다는 불우함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가족과 떨어져 타지를 홀로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의 모습에 가깝다.

긴 목을 곧게 빼어 먼 창공을 바라보는 모습은 기품 그 자체이지만 여기서는 기품 이미지보다 외로움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먼 창공을 바라보는 것은 거기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가족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불우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림 속의 계절마저 가을이다.

가을은 타지에서 홀로 떨어져 지내는 나그네에게는 낭만이 아닌 고통의 계절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데다 차가운 이슬까지 내려서 지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림 속의 시간은 밤인데 가을은 밤이 낮보다 훨씬 더 춥다.

그림 속의 학은 시린 두 발을 교대로 들어 자신의 깃 속에 넣는 것으로 겨우 추위를 견디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가련하다.

가을바람이 부는 대나무 숲도 이제 더는 안식처가 아니다. 그곳에서 맨 몸으로 가을을 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여기에 찬이슬까지 온몸에 맞아야 하니 고고한 학의 신세가 애처롭기 그지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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