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법
김영란 법
  • 임성재 <시민기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6.09.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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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마침내 시행됐다. 시행 첫날 언론들은 ‘관공서의 구내식당 이용자가 늘고 주변의 식당가가 한산해졌다’, ‘ 한정식집이나 일식집들의 손님이 뚝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음식점, 골프장, 소비재유통업 등이 타격을 받아 내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한편에선 그동안에도 ‘부패방지법’이 엄연히 존재했었고 부패방지위원회다, 국가청렴위원회다 하는 기구들이 있었지만 어디 부정부패가 줄었냐며 처음만 요란하지 조금 지나면 이 법안도 누더기가 되고 흐지부지 될 것이라며 법 시행 자체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로 이 법의 시행으로 우리 경제가 위축된다거나 조금 지나면 흐지부지 될 것이라는 냉소적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이 법의 시행은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발을 내디딘 것으로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꿔 갈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부정부패를 줄이면 경제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고 주장한다. 2012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부패와 경제성장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수준 만큼만 청렴해지면 1인당 명목 GDP(국내총생산)은 138.5달러 증가하고 연평균 성장률은 0.65%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경제적 효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의 고질적으로 만연한 학연·혈연·지연에 의한 청탁과 줄서기 문화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제정 과정을 보면 이 법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2010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벤츠여검사 사건’이 터졌다. 여검사가 내연관계에 있던 변호사에게 고급차량과 귀금속 등을 선물 받고 수사 정보를 제공했는데 재판과정에서 향응과 금품수수는 인정되나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영란 위원장이 이 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법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관피아’ 논란이 거세지면서 탄력을 받아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했고 드디어 시행에 이른 것이다. 아마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아직도 국회에서 표류중이거나 폐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란 법의 적용대상은 관공서, 공공기관, 인터넷 언론을 포함한 언론기관과 정기간행물사업자, 각 급 학교 등이다. 적용 대상기관은 4만개이고 직접 대상자는 240만명인데 배우자를 포함하면 약 40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대상자와 접촉하는 사람이 부정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건네면 처벌받는다는 점에서 전 국민이 법적용 대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일반 서민이나 정직한 공직자, 올바른 언론인, 진정한 선생님들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청탁하고 접대를 받아온 사람들이 정신 차려야 할 일이다.

이 법을 통해서 청산해야 할 것은 우리사회의 접대문화다. 접대에 무슨 연유로 문화를 붙여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접대문화가 부정과 청탁의 자양분이다. 처음에 접대를 받을 때나 접대를 할 때는 어색하고 힘들어도 한두 번 되풀이되다보면 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친해진 관계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청탁이 오고가고 소위 인맥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이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해 우리나라 법인들이 접대비로 사용한 돈이 약 10조원 정도라고 한다. 그중 대부분이 고급 룸사롱 같은 유흥업소에서 쓰였다. 국세청에 노출된 자료가 이 정도니 실제로는 훨씬 더 큰돈이 비자금이란 명목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고리를 끊어내지 않는 한 우리사회가 맑아 질 수 없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는 더 이상 성장할 수도 없다. 우려와 냉소로 시작한 김영란법이 부디 어두운 뒷거래의 암시장 같은 관습의 그늘을 벗겨내고 정의롭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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