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줄탁동시
  • 반영호<시인>
  • 승인 2016.09.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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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드디어 금화조의 알이 부화되었다. 보름 이상 암수가 번갈아 교대로 밤낮없이 품더니 탄생의 신비함이 실현되었다. 암컷이 날개를 다처 부자연스러운 몸이지만 금화조 부부는 결국 해내고 말았다. 4개의 알 중 2개를 부화시켰으니 50%의 성공이다. 알을 품지 않기로 유명한 금화조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확이다.

줄()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줄탁동시. 내가 좋아하는 말인데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비유하거나 서로 합심하여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참으로 교훈적인 좋은 말이다. 줄탁동시는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는 뜻의 과숙체락(瓜熟 落)과 쌍을 이루어 때가 성숙하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며 기회와 인연이 서로 투합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겠는가.

경청(鏡淸)이란 사람은 항상 줄탁지기( 啄之機)로 후학들을 깨우쳐 주었다. 그는 일찍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행각하는 사람(사방을 떠도는 중)은 반드시 줄탁동시의 눈을 가져야 하고 줄탁동시의 씀을 가져야 비로소 승려라 할 수 있다. 마치 어미가 밖에서 쪼려고 하면 새끼가 안에서 쪼지 않을 수 없고, 새끼가 안에서 쪼려고 하면 어미가 밖에서 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어미가 알을 품으면 알 속에서 자란 새가 때가 되면 알 밖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는데 이는 ‘줄’이며, 어미 새가 새끼 소리를 듣고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 것은 ‘탁’이다. 어린 새끼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 새는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 주는 스승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안과 밖에서 쪼는 행위는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스승이 제자를 깨우쳐 주는 것도 이와 같아 제자는 안에서 수양을 통해 쪼아 나오고 스승은 제자를 잘 보살피고 관찰하다가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우침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 이 시점이 일치해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이 일어난다.

꽃 시인 권 시인은 막역지간(莫逆之間) 절친이다. 꽃집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꽃에 대하여는 일가견이 있는데 詩도 꽃 시를 주로 짓는다. 꽃과 생물에 대한 상식이 풍부하여 하룻저녁에 두 세편씩 쓸 때도 있다. 다만 꽃에 대해 지식 위주로 너무 편향적인 면이 있어 한 두 군데 이미지 쪽으로 툭 쳐주면 기가 막힌 시가 된다. 나는 또 어떤가? 대체적으로 느낌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글을 쓴다. 권 시인은 나에게 이상과 공상 또는 주관을 배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리얼리티하게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으로 터치해 줌으로써 또 다른 맛의 글을 탄생시키게 해 준다.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지적 보완함으로서 완벽하게 완성시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엔 권 시인과 술 한잔 했다. 문학얘기 끝에 우리 늙어가며 이렇게 살면 어떠냐고 손영호의 ‘그러려니 하고 살자’는 시 이야기를 했다.

인생길에 내 마음 꼭 맞는 사람이 어디있으리./난들 누구 마음에 그리 꼭 맞으리?/그러려니 하고 살자.//내 귀에 들리는 말들 어찌 다 좋게만 들리랴?/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그러려니 하고 살자.//세상이 어찌 내 마음을 꼭 맞추어 주랴?/마땅찮은 일 있어도/세상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살자.… 중간 생략 …사랑하는 사람을 보냈다고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인생은 결국 가는 것./무엇이 영원한 것이 있으리.//그러려니 하고 살자.//컴컴한 겨울 날씨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자./더러는 좋은 햇살 보여 줄 때가 있지 않던가?/그러려니 하고 살자.//그래, 우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알 속에서 권 시인이 내 마음을 쪼니 나는 나대로 밖에서 그러려니 하고 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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