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하여
정의에 대하여
  • 김기원<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6.09.28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정의(正義)란 문자 그대로 바르고 옳음입니다.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와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를 일컫습니다.

흔히들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듭니다. 정의가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주는 미덕이라야 비로소 정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거라 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려면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주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재산,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가언계약에서 정의의 원칙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자유와 관련한 원칙입니다. 사회적 공리나 일반적 행복에 앞서는 자유로서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지요. 다른 하나는 사회적 경제적 평등과 관련한 원칙입니다. 소득과 재산을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그 이익이 사회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서야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정의에 대한 각각의 판단방식은 각자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과 종교적 신념에 의해 재단하고 투영됩니다.

정의의 잣대가 사람마다 정파마다 나라마다 다르니 세상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지구촌의 불행이 정의의 충돌로 빚어지고 있습니다. 양극단의 정의가 마치 마주 오는 기차처럼 정면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강요된 정의와, 정의의 맹신이 문제입니다.

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이 가미가제특공대를 만들어 대원들로 하여금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를 몰고 미군전함에 돌진토록 했습니다.

꽃다운 청춘들이 자신들의 자폭이 천황과 대동아공영에 이바지하는 정의라 믿고 아침이슬처럼 산화한 전쟁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패악이지요.

근자에 세계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IS대원들의 묻지마 폭탄테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순교하는 것이 알라신과 이슬람민족들을 위해 바치는 정의의 실현이라 맹신하는 탓입니다.

이처럼 어이없는 종교 간·민족 간의 정의의 충돌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사회도 이런 정의의 충돌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진보적 관점에서 보는 정의와 보수적 관점에서 보는 정의가 서로 달라 보수는 진보주의자들을 좌빨이라 부르고, 진보는 보수주의자들을 보수골통으로 부르며 한 치 양보 없는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신념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닌데 그렇게 원수처럼 지냅니다.

이제라도 자신이 신봉하는 정의가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아닌지, 두루 편하고 유익한 미덕인지를 겸허하게 성찰하여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융·복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의롭되 사회를 피멍들게 하는 정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튼 정의는 강하면 독선이 되고 넘치면 오만이 됩니다.

요즘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정치권에서 범람하고 있는 자기중심적·파당적 정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정의의 공통분모들을 모두 모아 누리를 밝혀줄 초인을 기다립니다. 행복·자유·미덕이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시인·문화비평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