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깊어지도록. 김광석처럼 …
가을! 깊어지도록. 김광석처럼 …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9.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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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나는 김광석의 노래에 사무친다. 아주 가끔씩 노래방에 가거나 통키타 라이브 카페에 가게 될 때 <이등병의 편지>이거나 <거리에서>를 꼭 부른다. 요즈음에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를 선곡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는데 다행히도 내 노래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등병의 편지>는 젊은 날 격리된 사회, 군대에서의 ‘가슴 속에 남은’, ‘무엇인가의 아쉬움’을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로 애써 달래는 대목이 절절하다. 그러면서도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라는 절규를 통해 내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는 위안으로 노래한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는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 비장함이 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이거나 ‘뜬 눈으로 지내던 막내아들 대학시험’,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부부는 그러나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사이에 두고 이별한 뒤 한마디 말이 없다.

문화철학자 김광식 서울대 교수(김광석과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는 <김광석과 철학하기>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김광석의 노래들 가운데 12곡에 12명의 철학자의 생각을 적용, 삶의 깊이와 행복의 비밀을 파헤친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현은 이 책을 “너무도 짧게 이 땅에 머물다간 김광석의 노래들을 통해 삶을 대하는 철학적 자세를 배우는 과정이 흥미롭다. 가객 김광석과 철학자 김광식의 어울림, 그 자체로 행복한 책,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갖도록 돕는다”라고 극찬한다.

김광식은 이 책에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빚지지 않은’, ‘서로 빚을 지지도 지우지도 않는 모두에게 자유롭고 행복한 이상적인 공동체’임을 헤겔의 노예의 변증법으로 설명한다.

김광석이 노래하는 <이등병의 편지>에는 가슴속에 남아 있는 무언가의 아쉬움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과감히 떠나보냄으로써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칸트의 인식론이 있다.

9월이 다 가고 있다.

스르륵 깊어가는 가을, 나는 문화철학자 김광식의 “사람(의 인식)과 세계의 관계를 평가하는 기준이 진리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평가하는 기준은 정의다”라는 <김광석과 철학하기>에서의 명제에 사무친다.

거기에는 또 “중용의 철학은 넘나듦을 거부하는 이분법이라는 반꿈결의 철학과 거리를 둔다. 밤꿈결의 철학인 이분법의 철학에는 가령 열정이 있든가 없든가 둘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열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간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깊어가는 가을의 의미심장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대한민국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던 농민 백남기씨가 317일 만에 가을 속으로 떠났다.

오늘부터 속칭 김영란법이라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공식 발효되면서 세상은 잔뜩 경직되고 있으며 국회에서 통과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고 여당 대표가 단식농성에 나서는 초유의 일이 하릴없이 벌어지는 이 땅의 가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몸서리치며 사람이라면 제발 이 가을! 깊어지도록… 김광석의 ‘타는 목마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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