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이 아는 대답
바람만이 아는 대답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09.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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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가을바람이 잠자는 방랑벽을 일깨운다. 내게 주어진 황금 같은 일주일을 도서관에서 보내다 전남 땅 강진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고속도로도 한산하고 하늘은 한가로운 양 떼들의 구름 목장이다.

정약용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길,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무화과 좌판이 줄을 잇는다. 촌로의 좌판 앞에 멈춰 서곤 지인들과 나눠 먹을 생각으로 한 상자를 구매했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의미지만, 실제로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자루 맨 끝의 불룩한 부분으로 둘러싸여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중국에서 처음 본 무화과를 잎은 동백 같고 열매는 탱자와 비슷하다고 기록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내실 가득 과육으로 채운 무화과, 마치 초야에 머물며 학문을 닦는 선비와도 같다. 있는 그대로 속을 보여주는 모양이 꼭 다산을 닮았다. 다산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백성에 대한 사랑이 하늘까지 닿은 목민관이다. 정조의 특명을 받은 암행어사로 활약하면서 부조리한 관리들을 벌하며 평생 백성이 잘사는 나라만을 꿈꾼 어진 정치가이다. 김영란법까지 출현할 정도로 곳곳의 부정부패가 정점을 찍는 오늘날의 세태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울퉁불퉁 힘줄이 솟은 듯한 뿌리의 길을 지나는데 쩌렁쩌렁 애매미 소리가 산맥을 튼다. 붉은 핏빛 드리운 작은 바위 계곡이 발을 잡는다. 긴 유배생활 동안 다산이 땅에 묻은 시름과 고독의 표징이리라. 초당에 앉아 앞을 보니 사방은 산으로 둘려 있고 하늘은 조각보처럼 빼곡하다. 그가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수백 권을 집필한 동암에 앉았노라니 모기떼가 극성이다. 천주교도라는 죄명으로 반대파의 표적이 되어 유배길에 오른 다산은 붕당의 희생양이다. 18년 유배 생활 동안 남긴 그의 일념은 오로지 국가와 백성의 안위였다. 청렴하고 지혜로운 관리이며 후학들에겐 ‘늘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요즘같이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자신만을 위한 비리와 부조리로 얼룩진 정치판의 세태와 견주어보면 새삼 삼백년 전 그가 그립다. 세금으로 징수하는 백성의 포목이 중앙 관청으로 들어갈 때 뇌물 여하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아전들의 부패를 막으려고 표준 자를 만들고, 생활의 지혜를 발휘한 얼음차로 그 무서운 청나라 사신을 감동하게 해서 받은 사례비까지도 고을 백성을 위한 발전기금으로 쓸 정도로 그렇게 다산은 청렴한 목민관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의 표심으로 당선된 정치인과 관복 입은 자들은 한번 쯤 떠올려볼 인물이다. 아이슬란드 대통령 귀드니 요하네슨이 딸과 함께 피자 가게 행렬 가운데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과는 너무 먼 모습이지 않은가.

밥 딜런의 노래처럼 ‘Blowin in The Wind 바람만이 아는 대답’일 것이다.

얼마나 긴 세월 흘러야/ 저 산들은 바다 되나/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를 찾나// 오 내 친구야 묻지를 마라/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어마어마한 책을 말 등 가득 싣고 길을 오가던 어린 귀농이(다산의 어릴 적 이름)처럼 아무쪼록 긴 세월 학문으로 인품을 닦고 올바르게 훈련된 제2의 정약용 같은 정치인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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