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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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9.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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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추석이라고 송편을 먹지만 솔향이 사라진 지 오래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산에 가서 솔잎을 따오라고 하셨다. 노는 자리를 마련해준 셈이라서 이리저리 다니다 늦게 와서 걱정을 끼쳐 드린 기억이 난다. 어린애 머릿속에 무슨 솔잎 따위가 중요하겠는가.

솔잎으로 찌면 덜 쉰다고 했다. 늦여름 더위가 남아있는 추석 무렵 음식을 보관하는 방도를 찾아낸 조상의 지혜가 놀랍다. 게다가 솔향이 얼마나 좋은가.

어렸을 때 송편은 깨 아니면 콩이었다. 조금 고급스러우면 개피(껍질 벗긴)낸 콩가루 송편이었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달짝지근한 깨 송편의 맛은 어린 내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먹다가 콩이 걸리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뱉을 수도 없는 형편이라 잘 골라야 했다. 조금이라도 검은색이 보이면 피했다. 그래서 그런지 추석의 선물로 설탕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 깨가 싫다. 콩가루 맛이 얼마나 깊은지, 이젠 깨가 들어 있는 송편을 피해 잡는다. 그래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명절을 보내는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깨도 설탕도 귀해 푸성귀로 속을 한단다. 배추 같은 걸로 말이다. 그래서 송편 크기가 만두처럼 크다. 세월이 지나면 그것도 북한 송편으로 유명해질는지.

어쩌다 솔잎이 이렇게 우리 곁에서 멀어졌는가?

뒷동산이라는 흔한 곳도 사라지고, 건실한 소나무 잎도 사라졌다. 병충해와 농약으로 뒤집어쓴 소나무라는 오명 때문에 이제는 솔잎을 깔아 떡을 찌지 않는다. 그래도 송편(松-)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모양이 송편을 닮았다고 송편이라면 우리말로 정말 ‘빛 좋은 개살구’다. 살구를 닮았지만 맛이 없어 개 같은 살구 짝이다. 옛날 송편은 송편, 요즘 송편은 개송편이 되고 말았다.

모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막내 고모가 1등이었다. 얼마나 앙증맞게 빚어내는지, 아무리 흉내를 내려 해도 되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리 모양이 안 나는지. 툭하면 터져버리고. 소를 많이 넣지 않는데도 모양이 영 나지 않았다. 남자랍시고 ‘송편을 잘 빚으면 시집 잘 간다’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막내 고모가 시집을 잘 갔는가? 그거야 보기 나름이지만, 노처녀로 시집가서 아들 하나 잘 낳아 도쿄에서 살고 있으니, 그럭저럭 사는 것 같다. 그쪽 대학 일로 들렸을 때, 도쿄에서 산 낙지를 먹어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날 저녁에 당장 ‘이자카야’(居酒屋)에 모시고가서 날 낙지를 사드렸다. 잘게 자른 낙지에 와사비를 풀어먹는 일본식 낙지를 나를 통해 먹어보았으니 행복한 건지, 아니면 술꾼이 아닌 나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지 않았으니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추석 차례(茶禮)라는 뜻은 술이 아닌 차를 올리는 것이라서 차례인데 차는 사라지고 술만 남았다. 밤에 지내는 것을 제사, 낮에 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정의한다면 모를까, 차 문화가 사라진 요즘의 의례가 마치 오늘날 송편 신세 같다. 술을 마시면서도 스님처럼 ‘곡차(穀茶)를 마시고 있소’라고 항변하면 모를까. 그러나 우리 곡차는 숭늉이요, 보리차였다.

교양철학수업 때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겠다는 1학년 학생에게 어떻게 배우자를 설득할 것이냐고 물었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 저도 그럴 겁니다. 아버지는 제사 때마다 늘 설거지를 하셨고, 저도 그럴 겁니다.” 그때 난 그 학생에게 배웠다. 4대 봉사라면 고조, 증조, 할아버지, 아버지 내외의 제사를 모시겠다는 것이다. 연 8회의 제사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남자들이 노동력을 기꺼이 제공하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날 이후 어른들의 눈초리에도 집안 행사 때마다 설거지를 자청했지만, 이젠 그런 행사도 솔향처럼 사라지고 있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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