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김영란법은
말하자면 김영란법은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9.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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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정말로 일주일 후 부터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세상이 올 것인가.

김영란법, 정확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공식 발효되는 2016년 9월 28일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반응이 만만치 않다. 한국사회가 서서히 놀라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

김영란법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영국의 팝그룹 비지스(Bee Gees)의 노래 를 흥얼거리는 조건반사가 나타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원망과 함께 권총으로 인질을 위협하던 탈옥수의 장면이 그만큼 충격적으로 각인된 탓인가.

1988년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국민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시절, 지강헌을 비롯한 12명 미결수들의 영등포 교도소 탈주와 인질 사건에서 경찰과 대치 중 듣고 싶었다는 노래는 여태 빈부격차의 상징적 기호가 되고 있다.

전체 적용대상 기관이 4만여 개, 직접 대상자 약 240만명을 포함해 400만명 가량이 대상자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법은 3, 5, 10이라는 숫자가 엄격하다.

공짜 밥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넘겨, 주거나 받을 경우 무조건 뇌물로 간주해 처벌하는 강력한 규제가 이날부터 적용되면 한국 사회의 해묵은 관료 중심 관행은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은 돈, 명예, 권력의 세 가지로 귀결된다.

성공적인 삶이거나 신분상승 등을 꾀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궁극적인 지배의 수단으로 차지하고 싶어 하는 돈과 권력, 명예는 그러나 지금껏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많으면) 권력은 저절로 얻을 수 있음은 매관매직과 공천 헌금 등의 사례로 얼마든지 확인됐다.

가진 것 없이( 타고난 가난과 물려받을 유산 없이)도 권력, 즉 권좌에 오르게 될 경우 그 힘에 빌붙으려는 재산가의 탐욕으로 인해 돈이 아쉬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돈으로 권력을 사고, 권력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등식은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 여겨져 왔다.

이름이 드높아지는 명예 역시 가난함은 초라하되, 돈과 권력이 함께 수반되는 부유함이 더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

그런 한국 사회에서 말하자면 김영란법은, 돈과 권력, 그리고 그 함부로 지배와 유린을 넘나드는 지배 구조의 연결고리를 끊어 내겠다는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몰고 올 변화의 태풍을 걱정하는 기득권 세력의 한숨과 더불어 최근 들어 선물과 뇌물의 구별 방법이 인터넷에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받고 나서 잠을 잘 잘 수 있으면 선물, 잠 못 이루면 뇌물이 그 첫째이고, 언론 등 외부에 공개돼도 문제가 없으면 선물, 그렇지 않으면 뇌물, 그 자리가 아니어도 받을 수 있으면 선물, 그 자리여서 받을 수 있다면 뇌물이라는 것인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 서서 받으면 선물, 앉아서 받으면 뇌물, 웃으며 받을 수 있으면 선물, 그냥 받으면 뇌물, 바라는 것이 없으면 선물, 잘 보이거나 덕을 보려 하면 뇌물이라는 구분도 있는데, 과연 이 말 만큼이라도 뇌물을 주고받는 이들이 순진할까라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는 지경이다.

그대 혹시 사회와 경제의 지나친 경직성이 염려되는가. 걱정하지 마시라. 뇌물이 사라지는 대신 선물이 홍수를 이루면 될 것이니.

게다가 가진 자들의 탐욕이 이 법을 그냥 두겠는가. 그래도 제발 내 예상이 틀렸다는 조롱을 들었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김영란 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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