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것, 내 마음의 집
같이 사는 것, 내 마음의 집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공예세계화 팀장>
  • 승인 2016.09.20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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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긴 연휴의 끝, 이른 아침 큰딸 아이를 다니던 대학교 기숙사로 보낸다. 한두 번도 아닌데 마음 한 편 왜 이리 시리고 아린지, 보내고 이내 자고 일어난 빈 침대를 본다. 둘째는 옆에서 자고 있다.

아이들이 자는 방, 책상이 허름한 창고를 아이들과 함께 고쳤다. 석고보드를 대고, 테이핑 작업을 하고 페인트를 함께 칠했다. 그리고 전구 하나를 달고, 침대를 손수 짜, 매트리스를 얹어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독립해 살겠다고 부엌도 없는 단칸방을 얻어 살던 곳이 3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가족이 사는 집이 되었다. 자취하던 집을 신혼집으로 마련해 한 달 내내 수리를 했다. 미술학원 수업을 끝내고 하루 몇 시간씩 그렇게 고치고 고친 집에서 큰아이를 키우고 작은아이를 키우고 막내까지 키워냈는데, 이젠 다 커서 집을 떠난다.

이 집 어느 한 곳 아이들의 커가던 기억과 흔적이 확연하지 않은 곳이 없다. 집이라는 공간은 함께 사는 많은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자그마한 터에 자리 잡은 공간, 그 공간에 다섯 명의 사람들 외에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 너무나 많아 이젠 기억하려면 약간의 고민이 있어야 할 지경이다.

지금의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일일이 집으로 들였다. 한평생 삶 전부가 되어버린 그렇게 만든 작품을 대할 때면, 그 삶의 일부라도 소중히 기억하고자 집으로 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이젠 발 디딜 틈이 없다. 잔 하나하나에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고, 차를 마시며, 잔을 비울 때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산다. 이 사람의 초기 작품은 이랬구나. 젊었을 적의 모습을 회상하기도 하면서.

함께 사는 한 사람은 나에게 맛난 나물에, 밥에, 국을 담아 날 대접한다. 방안 가득 향을 피울 수 있는 향꽂이 선사한 사람, 어떤 사람은 시원한 바람으로 더워진 내 몸을 식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책을 읽을 만한 편안한 자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길진 않지만 내 삶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함께 살 수 있는 내 집. 내 마음속 기억들의 시간이 이 집 곳곳에 자리하고 매일 대화 할 수 있는 내 집.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내 집에는 그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난 정중히 대접받고 호강하며 매일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평생을 바쳐,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 준 것이다. 내 마음 집, 참으로 귀하고도 귀한 집이다. 내 삶에 기억들로 남아 이렇게 한 공간에서 사는 집, 나를 행복하고 풍요롭고도 귀하게 살게 해준 사람이 함께 사는 집, 함께 사는 여러분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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