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역사에 관심 없는 시의원들
천안 역사에 관심 없는 시의원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6.09.20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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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내포)

오래전 일이다. 천안 북면의 일부 주민들이 쌀 한 가마에 ‘국보’를 팔아치웠다. 몇 해 전 지역의 80대 원로로부터 동국대에 있는 국보 209호 보협인석탑의 반출 경위를 들었다.

당시 한 스님이 북면 대평리 개울을 건너면서 디딤돌로 사용되던 석탑 부재를 발견하고 주위 밭에 있는 부재까지 수습해 헐값에 매입했다. 주민들은 그 ‘돌들’을 트럭이 들어올 수 있는 연춘리 대로까지 우마차로 실어다가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후 이 석탑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모르지만 동국대로 갔다.

지난 9일 천안시청 대회의실서 ‘고려시대 천안의 역사와 문화’ 학술회의가 열렸다. 천안 고려 사지(절터) 현황을 발표한 한 연구자가 보협인석탑 촬영 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동국대 측이 “사진 찍어 어디에 쓸 것인지” 등 꼬치꼬치 캐문 뒤에 촬영을 허락했다고 한다. 천안에 사는 이 연구자는 화가 나서 “천안의 보협인석탑이 어떻게 동국대에 가 있는지 꼭 밝혀내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밝힌 유출 과정을 보면 천안시민으로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쌀 한 가마에 아예 들어다 준 거였다. 그래도 보협인석탑 반출 시점이 문화재보호법 발효(1962년) 이후라면 동국대는 입수 경위를 밝히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천안 출신’ 국보는 3개다. 그 중 한 개만 천안에 있고 두 개는 외지에 있다. 보협인석탑 말고도 천안 성거산의 천흥사 동종이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반출하기 힘든 성환 홍경사비(碑)만 온전히 천안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 모든 일은 시민의 역사 무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시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史)에 관심이 없으면 누구도 그 역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역사는 시민이 지킬 때 빛을 낸다.

그런데 지난 9일 학술대회 상황을 볼 때 “천안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시민 참여는 적지 않았지만 꼭 왔어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첫째 천안시의회 의원들이다. 시에선 맨앞 네 자리를 비워 놓았는데 22명의 시의원 중 누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천안은 왕건이 만든 신도시다. 왕건이 930년 후삼국 통일 염원을 담아 만든 도시다. 천안을 비롯해 직산·성거산 등 1000년간 사용해 온 지명은 모두 왕건이 직접 지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천안시가 처음 돈을 내 마련했다. 지금껏 시가 천안 도시 탄생의 역사를 망각한 걸 반성하는 자리다.

천안시의원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4년 전인 2012년 9월 시의원 10명을 ‘어렵게 모시고’ 국립공주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천안의 원삼국시대 귀중한 유물들이 천안박물관에 있지 않고 공주박물관에 있는 걸 눈으로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의원들은 “이런 천안 유물들이 어떻게 공주에 있단 말이냐”며 연신 놀라움을 나타냈다. 천안으로 가져올 방안을 의회 차원서 검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때 뿐이다. 없었던 향토사 애착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었다.

또 꼭 경청해야 했던 집단은 지역 언론이다. 모두 발표 현장엔 오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시청 보도자료만 베꼈을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지역사 발굴과 선양은 몇몇 향토사학자의 힘으로만 할 수 없다. 외부 연구자들에게 맡길 일도 아니다. 시의원, 지역 기자를 포함한 시민이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날 안하무인격 질문으로 시민 품격을 떨어뜨린 K씨 같은 사람은 절대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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