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용기
신선한 용기
  • 배경은<충북기독병원 원무과>
  • 승인 2016.09.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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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충북기독병원 원무과>

두 부자(父子)가 퇴원을 하신단다. 뇌경색으로 다리를 절게 되고 말이 어눌한 아버지가 먼저 입원하고 몇 달 뒤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아들이 입원했다. 요양기간이 지나고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퇴원하게 된 것이다.

물론 두 분 모두 큰 사고를 겪으며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했고 이곳에서 약물치료와 요양을 병행했다. 내게서 빌려 가셨던 휴대폰 충전기를 퇴원 선물로 드리며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새로운 생의 발걸음에 응원과 축복을 마음으로 빌었다.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삶은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참된 용기란 무엇인가를 토론하며 새로운 사유로 자신의 틀을 깬 ‘라케스’가 생각났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승리를 경험한 장군들과 소년 라케스가 전쟁에서의 참된 용기, 삶과 배움에서의 참된 용기란 무엇인가를 놓고 아테네 시대에 토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들은 입을 모아 제자리를 지키며 적군을 물리치는 일이 참된 용기라고 정의했고, 당돌하고 탁월한 라케스는 용기의 본성은 혼의 인내라는 말로 토론을 시작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용기는 가장 훌륭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며 지혜를 수반하는 인내라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지혜로운 인내가 참된 용기에 근접한다는 것에 동의하며 지혜와 용기는 미덕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라는 것에도 함께 동의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참된 용기를 가진 사람은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줄 알고 만사가 잘 되도록 적절하게 사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한 것을 불변의 진리처럼 끌어안고 사유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용기에 관한 올바른 정의를 찾았다는 안도감에서 벗어나 영혼을 돌보는 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참된 용기를 발휘하기 위한 지혜를 쌓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토론을 다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와 토론자들은 두려움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참된 용기로 가는 길이라는 것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병식을 분명히 아는 것은 두려움에 직면하는 탁월한 용기다. 그리고 그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질환에 맞는 약물을 찾고 상담과 더불어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야말로 참된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곳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살던 동네와, 거닐던 거리와 골목에 가면 늘 있는 것들과의 재회를 왜 그리워하지 않겠느냐마는 용기의 본성이 혼의 인내임을 알기에 자신과 협상 중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때가 되어 퇴원한다. 그러나 이곳의 몇몇 사람들은 폐쇄병동과 개방병동을 오가며 자신과의 싸움 중이다.

출근하면 늘 빨래를 옆에 널어놓고 한동안 앉아서 책을 읽던 아들의 모습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어눌한 걸음으로 산책길을 돌고 나면 아들이 다리를 끌고 아버지가 밟은 길을 천천히 걸어낸다. 두 사람은 같은 병실에서 함께 식사하고 함께 잠을 자며 요양의 시간을 인내했다. 몸이 더 불편한 아버지가 늘 아들의 걸음걸이를 보며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끔 건네주시는 웃음에서 많은 내공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고 지나는 환우와 직원들에게 축복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제껏 살아온 삶과 이별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을 온몸과 영혼으로 이겨낸 아름다운 부자가 앞으로 살아 낼 삶의 참된 용기가 생성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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