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
추석 선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9.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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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고기가 흔치 않았던 시절, 소고기 한두 근이 최고의 명절 선물인 때가 있었다. 1960년~1970년대 얘기인데, 없는 집에서는 돼지고기나 생선 몇 마리라도 ‘받으면’ 좋았다.명절 전날, 정육점에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고기를 선물로 받아 집에 가져가서 뿌듯한 표정으로 내놓던 어른들의 모습.

그리고 그 소고기로 무를 넣고 국을 끓여 차례상에 올린 후 온 가족이 모여 평소보다 훨씬 푸짐한 ‘제삿밥’을 먹으며 좋아했던 시절.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모두가 넉넉하지 못했을 때 겪었던 오래전의 추억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명절 선물로 설탕이 인기를 끌던 때도 있었다. 역시 1960~70년대 얘기다. 지금은 인체에 해롭다며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설탕이지만, 1960년대엔 정말로 없어서 못 먹었을 정도로 귀했다. 부잣집에서만 구할 수 있던 설탕이 500g, 1kg 단위로 포장돼 시중에 명절 선물로 나오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명세를 탔던 명절 선물 가운데 제과회사들이 만든 종합선물세트가 있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이 선물에 열광했다. 1970년대 초에 동양제과, 롯데제과 등이 만들어 큰 재미를 봤다.

직사각형의 박스 포장 안에다가 비스킷이나 껌, 과자, 장난감 등을 대여섯 개 이상 넣은 선물세트였는데 날개 돋힌듯 팔렸다. 제과회사마다 이 과자 종합선물세트의 판매에 사활을 걸 정도였다.

명절 때 친인척 아이들에게 선물로 최고로 안성맞춤이었던 종합선물세트. 먹을 게 흔해진 지금, 아이들에게 그런 ‘과자 보따리’를 명절 선물로 전했다간 면박이나 당하지 않을까.

1980년대 들어 경제가 발전하면서 명절 선물의 형태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 위주에서 입는 것, 즐기는 것 등의 공산품 형태의 선물이 등장했다. 과거 스타킹, 속옷 등에서 넥타이, 구두, 지갑 등 ‘패션 용품’이 선물로 등장했다. 송이버섯, 전복, 굴비 등 고급 특산품과 한우갈비세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다.

1994년엔 박정희 대통령 시절(1975년) 없어졌던 상품권이 부활했다. 이때부터 상품권이 명절 최고의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해마다 설문조사에서 백화점 상품권은 받고 싶은 명절 선물 1순위에 올랐다.

명절 연휴 기간에 추석 선물이 대거 중고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명절 선물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인터넷 중고 시장에 매물로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과일이나 통조림, 식용유, 치약, 샴푸 등이 담긴 선물 센트가 최초 가격의 절반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해마다 거래량과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생필품 세트의 경우 지난해보다 매물이 60%나 증가했다.

추석을 앞두고 천안의 한 백화점에 300만원짜리 굴비 세트가 선물로 등장했다. 10마리 포장이니 한 마리에 30만원 꼴인 셈이다. 과연 팔릴까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추석 사흘 전에 준비한 물량이 모두 동났다.

생필품 선물 세트까지 팔아 단돈 1만여원의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과 한 마리에 30만원짜리 굴비 밥상을 차려 먹는 사람들. 양극화 시대를 맞은 우리의 자화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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