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달
추석의 달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9.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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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이미 지났지만 추석의 달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일 년 중 달이 가장 밝은 날은 바로 추석이다. 그래서 한가위 보름달은 모든 달의 대표로 인식된다. 사람들이 달을 보고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흔한 것은 고향과 가족이다. 어떤 이유로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 타향에 홀로 떠도는 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면 잊고 있었던 고향과 가족이 떠오르곤 한다.

이렇듯 달, 그중에서도 한가위 보름달은 향수와 그리움의 정서를 대변한다.
송(宋)의 시인 소식(蘇軾)은 추석의 보름달을 보고 무엇을 떠올렸을까?

 

추석의 달(仲秋月)

暮雲收盡溢淸寒(모운수진일청한) 저녁구름 걷혀 맑고 서늘한 기운 넘치는데
銀漢無聲轉玉盤(은한무성전옥반) 은하수 소리 없이 옥쟁반에 구르네
此生此夜不長好(차생차야부장호) 이 세상 이런 밤 늘 있는 것도 아니니
明年明月何處看(명년명월하처간) 내년엔 저 밝은 달 어디에서 볼꼬?


추석이 되면 무엇보다도 밤이 궁금해진다.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추석을 맞은 시인은 낮 동안 짙게 끼어 있던 구름에 노심초사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해질 무렵이 되자 거짓말처럼 구름이 말끔하게 걷히었다. 무난히 보름달을 볼 수 있게 되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구름은 걷히고 날씨 또한 맑고 서늘한, 추석 특유의 날씨로 돌아와 있었다. 밤이 되자, 시인은 적당한 채비를 하고 달 구경에 나섰다. 시인은 고개를 들어 추석의 밤하늘을 응시하였다. 맑은 밤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나타나는 은하수가 마치 큰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느낌이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흐른다기보다는 구르는 것으로 보였던 것인데, 이는 하늘에 떠 있는 옥쟁반으로 인해 생긴 착시였으리라. 추석 밤의 보름달은 일 년 중 가장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흔히 옥쟁반에 비유되곤 하는데, 여기서 착안하여 은하수의 별을 옥쟁반을 구르는 구슬로 본 시인의 상상력이 참으로 기발하다.

추석 밤하늘의 장관에 넋을 잃고 있던 순간, 시인의 뇌리를 스친 것은 불안감이었다. 이 삶과 이 밤이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일 뿐, 영원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떠돌이 신세인 시인이 내년 추석 달은 또 어디서 만나게 될까?

일 년 중 가장 밝은 추석 밤의 보름달은 가장 아름답지만, 또한 사람을 가장 상념에 젖게 하기도 한다. 고향과 가족 그리고 무상한 삶의 모습까지 추석 보름달이 만들어 주는 상념의 골은 끝없이 아득하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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