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을 맞으며
추석명절을 맞으며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6.09.12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 김기원

내일모레 저녁에 휘영청 뜰 한가위 대보름달이 자못 기다려집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길고 긴 살인적인 더위와 열대야를 이겨내고 맞는 추석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에 비해 추석이 일찍 찾아와서 그런지 명절분위기가 덜 납니다.

강렬한 햇살로 인해 햇과일들은 잘 영글었지만 아직 벼는 황금 들판을 이루며 목하 여물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5일간의 황금연휴로 인해 있는 사람들은 신이 나고, 없는 사람들은 죽을 맛입니다.

이미 국내공항들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한숨소리로 인해 하늘이 퍼렇게 멍들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그 추석이 이렇게 변질해가고 양극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추석 전 벌초행렬로 고속도로가 한때 정체를 빚기는 했습니다만 그 열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벌초를 지역농협에 대행하기도 하고, 벌초를 하지 않는 무연묘들이 늘어나니 그럴 수밖에요.

이젠 화장문화가 대세이니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벌초하는 모습은 머잖아 박물관이나 고전에서나 볼 수 있는 옛 풍속이 되고 말 것입니다.

조상에게 올리는 차례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석날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차례를 지내는 일입니다.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햇과일과 함께 차례 상에 올린 후 맑은 술로 차례를 지내지요.

차례를 지낸 뒤 음복을 하고 조상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데, 이 또한 하지 않거나 교회나 사찰 의식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줄다리기, 씨름, 강강술래 등의 세시풍습은 사라진 지 오래 이고, 그 자리를 영화 관람이나 여행 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위가 되면 아침저녁으로 기후가 쌀쌀해져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아이들은 추석빔이라 불리는 새 옷이 입고 싶어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지요.

아무튼 추석은 달을 숭상하는 문화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옛사람들은 세상을 날마다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시했으나,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만월(滿月)은 고마운 존재로 숭상했습니다.

떠오르는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빌 만큼 말입니다. 어두운 밤에는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지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 만월이 고마워 보름달 아래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를 벌였고,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음력 8월 15일을 일러 중추절·한가위·추석이라는 민족 최대명절이 됐습니다.

각설하고 이번 추석은 이래저래 어수선하고 심란합니다.

나흘 전에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와 반대에도 5차 핵실험을 강행해서 세계를 경악게 했고, 끝내 우리 정부와 국민을 핵의 인질로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양심이며 최후의 보루인 판사가 그것도 부장판사가 검은 커넥션에 연루돼 대법원장이 사과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여야 할 검사가 그것도 부장검사가 범법자와 놀아났습니다.

수출품을 실은 한잔해운선박이 하역은커녕 난파선처럼 외국 바다에 떠돌고 있는데 회사를 거덜낸 경영인은 수백억 원의 연봉과 퇴직금을 타갑니다.

작금의 시국이 이렇게 엄중함에도 여·야 정치인들은 사드배치도 국익도 나 몰라라 하고 대권 몰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축제다, 박람회다, 엑스포다, 세계대회다 하며 돈을 흥청망청 써 댑니다. 눈먼 나랏돈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 꼴을 보는 민초들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그래도 민초들은 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빌고 또 빌겠지요.

가엾은 우리 대한민국을 부디 굽어 살펴달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