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버릴 것은
정작 버릴 것은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9.1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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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삼복 염천이 서늘하도록 에어컨을 켜놓고 싶었다. 아꼈는데 요금폭탄을 맞았다. 마음이 더워진다. 방마다 무던한 선풍기가 안간힘을 써도 더위 감당은 못하더니 한 대가 수상쩍다. 며칠만 버텨주면 폭염도 간다는데 … 성할 때도 몸뚱이가 자주 뜨거웠는데 허우적거리며 아예 바람을 내지 못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나이순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기준에 따른다면 선풍기는 이미 바꿀 때가 한참 지났다.

선풍기가 화재를 불렀다는 뉴스가 신경 쓰여 내놓았더니, 남편이 버리는 것 꽤 좋아한다고 타박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세월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이다. 재활용 박스 안에 넣어버렸다. 이별하자 며칠 사이에 바람이 선선하다.

버릴 물건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내 기준은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다. 고장 났거나 파손된 물건은 집안의 기운을 흐트러뜨린다. 아들을 낳고 샀던 6단 서랍은 33년이 되었는데 은은하게 닳은 흔적만 있어 정이 간다. 생기 넘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듯이 오래됐어도 큰 탈이 없는 가구나 물건은 긴 세월 함께 살아온 정인(情人)처럼 편하다.

‘맙소사-.’ 남편이 선풍기를 들고 들어온다. 내게 낭비벽을 운운한다. 정말 이용가치가 없어야 버리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기준에서 보면 그른 말은 아니다. 관점에 따라 나는 낭비벽이고 두 분은 근검절약이다. 나는 탁월한 선택이고 두 분은 청승이다. 그렇다고 잘은 꼽재기는 아니시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도로 들여놓고 굳이 선풍기를 끌어안은 남편도 청승이다. 사실 남편과 두 분은 근검절약이 분명한데 근거 없는 나의 낭비벽을 인정하기가 싫다. 문제인가?

남편의 손끝에서 선풍기가 다시 돈다. 저 바람의 변덕을 믿어야 하나. “잘도 돌아가는구만” 몇 해는 더 쓸 수 있다고 장담을 하며 내 기준을 무색하게 한다. 허벅지게 바람을 일구던 선풍기를 끼고 살더니 버리자는 말에 서운했나 보다. 아니 아까웠던 것이다. 연신 풀어내는 바람을 뿌듯하게 맞고 있다.

이 사건을 모르는 어머니, 넘쳐서 귀함을 모르는 세태를 두고 복도 방정을 떨면 언젠가는 모자람으로 아픈 법이라고 혀를 차신다. 당신의 세월에 비추어 흥청망청한 젊은 세대의 고질병을 나무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을 두고 하시는 말이지만 뜨끔했다.

세대 차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어머니 삶의 방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남편까지 몰아세워 청승이라고 했지만 결코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이 닦아놓은 발판 위에 우리가 우뚝 서 있지 않은가.

근검절약과 유비무환의 정신까지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는 정작 마음은 비워두셨다. 쓸모없는 감정들을 그득하게 채워놓고 전전긍긍하는 나보다 한 세기를 가까이 살아오시며 승화된 언어는 감칠맛이 난다. 나도 한 세월 더 살아내면 닮아가려나. 정작 버릴 것은 내 안에 있는데 틀어쥐고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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