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세습관행 한계 왔다
대기업 세습관행 한계 왔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9.11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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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그제 국회 청문회에 나와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나 무능한 경영과 몰염치한 처신으로 나라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은 눈물 몇 방울로 무마될 문제가 아니다. 청문회에서 그녀는 “집에만 있다가 (경영인으로) 나와 전문성이 떨어졌다”며 자신의 무능을 변명했다. 본인 고백대로 경영은 낙제점이었지만 얼굴에 철판 깔고 자신과 일가의 잇속 챙기는데는 가히 천재적 자질을 과시했다. 최 전 회장은 세상을 뜬 남편을 이어 2008년 한진해운 회장에 취임했다. 시장을 오판해 사업을 마구잡이로 확장하다 회사 부채를 155%에서 1445%로 10배 가까이나 늘렸고 급기야 시아주버니인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에게 지분을 넘기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한진해운 부실 문제가 수면에 떠오를 즈음 본인은 물론 딸들의 주식까지 재빨리 팔아치워 주가폭락으로 인한 손실을 피해갔다. 수천명의 회사 임직원이 거리로 나앉을 상황이지만 마지막 연봉은 물론 퇴직금 52억원까지 알뜰하게 챙겨 회사를 떴다. 알짜 계열사만 골라 가져가 ‘유수홀딩스’를 창업한 후 이 회사를 통해 한진해운 사옥 임대료로 연간 140억원을 챙겼다. 자신의 경영실패로 사경에 빠진 회사에 빨대를 들이대고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단물을 빨아댔던 것이다. 계열사를 통해 100억원짜리 호화 요트를 사들인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그녀는 막대한 액수의 국고도 축 낼 전망이다.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이 한진해운 대출과 보증 등으로 지게될 1조원 가량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메꿔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청문회에서 고통분담을 촉구하는 추궁에는 즉답을 피해갔다. 고작 한다는 말이 “몇달간 한진해운으로부터 사옥 임대료를 받지못하고 있으니 고통 분담을 하는 셈이다”는 궤변이었다. 한진해운을 집세도 부담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뜨린 장본인이 받고싶어도 못받는 임대료를 들어 고통 분담 운운한 것은 웃지못할 코미디였다.

최 전 회장의 몰상식을 보며 떠오른 인물이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일본 ‘교세라그룹’ 명예회장이다. 27살에 단 300만엔으로 세라믹 부품공장인 교세라를 창업해 계열사 226개, 직원 6만8000명의 세계 100대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그가 경영에 간여하던 56년간 이 회사는 단 한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 지난 2010년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일본항공이 파산하자 일본 정부는 가즈오 회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는 13개월만에 일본항공을 흑자로 전환시켜 경영의 신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존경받는 진짜 이유는 경영성적보다 경영철학에 있다. 그는 늘 “기업 경영의 가장 큰 목적은 모든 직원의 행복을 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그의 경영철학을 농축한다. “달걀을 얻고 싶다면 닭을 소중하게 다뤄라. 닭을 학대하거나 죽인다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직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직원이 즐겁게 일하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온다”.

이런 경영관에 따라 그는 세습과 족벌경영을 반대했고 실천했다. 1997년 명예회장으로 은퇴하면서 회장 자리를 자식이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줬다. 은퇴하며 받은 퇴직금 60억원도 기부했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요구해도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따라 준 것은 내가 족벌과 세습을 반대하며 그들의 주인의식을 높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최 전 회장은 철저히 무능했고, 직원의 행복은커녕 생사조차도 관심이 없었고, 세습과 족벌경영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사회에 엄청난 폐해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가즈오 명예회장과 정확하게 대비된다. 그녀는 경영권 세습을 둘러싼 두 아들의 다툼 속에서 각종 의혹과 추문이 터져나와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는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조카다. 한 쪽은 세습의 결과로, 한 쪽은 세습의 과정에서 국가경제까지 손실을 겪는 심각한 부작용을 노출하고 있다. 재벌가 중 한진과 롯데에서만 벌어진 일도 아니다.

최 전 회장의 실패와 부도덕을 책망하기 전에 우리 재벌기업의 세습 관행을 전국민적 의제로 삼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한민국 1위, 세계 7위의 거대 해운사 CEO로 졸지에 등판한 ‘집에서 밥만 하던 주부’가 회사는 물론 수출경제까지 만신창이를 만들어놓고는 “전문성이 모자란 탓에 실패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기괴한 경제구조의 문제를 심각하게 곱씹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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