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만 같아라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09.11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밭 아래쪽에서 승용 예취기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복숭아 선별 작업하다 말고 잠시 내다본다. 이웃 밭에서 풀을 깎던 이장님이 예취기를 탄 채로 올라오셨다. 당신 밭에 올 때마다 잠시 들러 이것저것 조언해주시는 분이다. 오늘은 선별 작업을 제대로 하는지 살펴보러 오신 모양이다. 요즈음 복숭아 값이 좋아 그런가. 다른 때보다 밝은 분위기다.

손님들뿐만이 아니다. 나도, 딸아이도, 토요일이라 손녀를 돌봐 주는 사위도 다 기분이 괜찮다. 그러고 보면 온 동네가 다 밝은 느낌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받는 느낌이다.

복숭아 주산지인 우리 동네는 봄부터 무언가가 잘 안 풀리는 느낌이었다. 복사꽃이 필 때는 연일 계속되는 비바람에 저온현상까지 겹쳐 수정이 잘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된 강풍에 천공병까지 발생해 비상이 걸리다시피 했다. 소독도 열심히 하고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자제인 보르도액도 살포했지만, 잎새는 물론이고 복숭아에까지 작은 구멍이 생겨 농사꾼들 어깨가 내려앉고는 했다.

이 사태는 전국에 걸쳐 발생한 일이라 생산량이 줄어 그나마 가격은 좋을 거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나! 막상 수확해보니 복숭아 생산량이 엄청났다. 농사꾼 개개인의 생산량은 줄었지만, 포도, 마늘, 감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몽땅 복숭아 농사로 몰려 재배 면적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가격이 추석을 앞두고 반짝 뛰어올랐다. 남부지방의 복숭아는 생산이 끝났고, 중부 지방에도 만생종만 남았으니 추석 물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추석 명절 좋을시고 한가위만 같아라. 가격이 치솟자 못난이 복숭아마저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천공병 때문에 점이 박힌 복숭아도, 가지에 눌려 삐뚤어진 복숭아도, 무엇에 찍힌 자국이 있는 복숭아도…. 도매시장으로 올려도 기본은 나오고, 직거래를 해도 괜찮은 값을 받는다. 내가 농사지은 농산물이 이렇듯 대접을 잘 받으니, 잘 기른 자식 밖에 나가 칭찬받았을 때처럼 으쓱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복숭아 재배 면적이 급하게 는 것은 사실이고, 내년부터는 천공병도 잘 방제할 것이며, 개화기 날씨도 좋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농사꾼들의 다리에 힘이 탁 풀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상황이 나는 기쁘다. 지금이라도 가격이 올라 농사꾼들이 깊은 주름을 만들며 활짝 웃어보니 좋지 않은가. 더군다나 한가위를 며칠 앞두고 마음껏 웃어보지 않는가. 내년 일은 내년에 생각하고 드물게 온 지금의 이 기분을 많이 즐겼으면 좋겠다. 이 기분을 계속 이어 가 한가위에는 고향 방문하는 피붙이들과도 많이 웃어보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