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다
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다
  • 최양재<미평여자학교 교무계장>
  • 승인 2016.09.11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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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최양재

전국적으로 매년 6만명 넘는 청소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의든 타의든 학교를 떠나고 있다.

갑자기 이정표를 잃은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편견 없이 적응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도탈락자란 주홍글씨와 직면하는 현실마다 느끼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갇혀 미래의 꿈을 접어야 하는 그들의 마지막 종착역은 가출과 비행이다.

내가 근무하는 미평여자학교는 학업 중단 후 반복되는 가출과 비행의 종착역에서 하차한 아이들이 국가의 보호 아래 자신이 지나온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곳이다.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넌 지금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것이 뭐니?”라고 질문하면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요”라고 답한다.

그 마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떨어지며 증폭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간절한 절규가 느껴진다.

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란 믿음으로 지난 5월부터 이곳의 아이들은 퇴직하신 선생님과 대학생 봉사자, 그리고 이곳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희망의 등불을 하나씩 켰다.

학업 중단 이전부터 수업결손이 많았던 아이들은 “선생님 한반도가 뭐예요?”라고 심각한 표정을 하며 질문을 하거나 때론 스스로 답답해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려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기본적인 단어의 의미까지 설명하며 이해시켜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지 아이들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며 우리는 밤낮을 동행했다.

지난 8월 25일 2016년 제2회 검정고시 합격자가 발표됐다. 우리 미평여자학교는 중졸 4명과 고졸 12명이 응시해 전원 합격하였다.

과거의 시험보다 합격이 용이해져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는지 몰라도 학업성취도가 낮았던 우리 아이들의 수준과 전국 평균 합격률이 73%라는 걸 생각하면 지문이 없어질 때까지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단순한 합격이란 결과보다 패배와 포기에 익숙했던 과거를 지우고,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해 희망의 등불을 지켜내고 자신감을 충천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상대의 허물을 찾아내려는 독한 눈과,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이분법적 논리를 펴며 우위를 점하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가며 희망이란 말을 쉽게 들어보기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점점 실종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때를 놓치면 영원히 옹이로 남아 우리 미래의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37만명의 학업중단 아이들에 대해 너무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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