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돌아온 탕자
  • 반영호<시인>
  • 승인 2016.09.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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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귀소본능의 표본이라면 연어다. 연어가 정확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은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하천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능력을 가졌다는 설과 후천적으로 어릴 때 익힌 하천의 냄새를 기억하여 회귀한다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오랜 여정 끝에 회귀에 성공해 산란의 임무를 끝낸 암수는 보통 3일 안에 기진맥진하여 상처투성이로 숨을 거둔다. 모험으로 가득 찬 연어의 여정은 이렇게 끝을 맺게 된다.

집 나갔던 금화조가 돌아왔다.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일찍 새들의 울음소리에 깨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귀에 익은 새소리가 우리가 아닌 대추나무 위에서 나는 것이 아닌가. 앗! 새 우리 문이 열린 것이나 아닌가 싶어 황급히 확인해 보았으나 닫혀 있었고 철망이 뚫린 곳이나 없나 꼼꼼히 살펴보아도 아무 이상 없이 그대로였다. 우리 안을 샅샅이 훑어보고 한 마리 한 마리 체크를 해 보아도 결원된 새는 없었다. 잉꼬 문조 호금조 금정조 카나리아 십자매 금화조. 대추나무 위에서 나는 소리는 금화조 수컷소리다. 자세히 올려다보니 역시 금화조 수컷이다. 갑자기 가슴이 뛴다.

금화조는 우리나라 텃새가 아니다. 혹시 이웃 누구 네가 기르던 새가 탈출했으면 모를까 야외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새다. 부랴부랴 매미채로 잡으려 했지만 높은 가지까지 닿지를 않는다. 고심 끝에 속문만 닫고 덧문을 열어놓았다. 물론 모이를 덧문 안쪽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시나 포드득 날아갈까 조심조심 멀리서 지켜보는 마음이 떨린다.

드디어 금화조가 덧문 안으로 들어갔고 잽싸게 문을 닫았다. 그 새다. 2개월 전 모이를 주려고 문을 여는 순간 도망쳐버렸던 그 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새의 왼쪽 발톱 하나가 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보았다. 너무나 반갑고 가슴 벅찬 일이다. 새가 귀소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철새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금화조가 참새, 까치, 꿩 등은 우리나라에 일 년 내내 살면서 번식하는 텃새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는 그곳의 텃새일 뿐 우리나라 텃새는 아니다.

새는 텃새와 철새로 구분되고, 철새는 또 번식지와 월동지 철새로 구분한다. 즉 철새들은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곳(번식지)과 겨울을 나는 곳(월동지)이 다르다. 철새는 매번 새 번식지나 월동지를 찾지 않고 늘 같은 경로로 이동하며 놀라운 귀소성을 보인다.

몇 해 전에 어느 조류 전문가가 제비의 귀소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제비 열 마리의 다리에 인식표가 새겨진 가락지를 부착했다. 이듬해 봄, 열 마리 가운데 여섯 마리가 원래 둥지에 정확하게 돌아와 전문가를 놀라게 했다.

철새는 아니지만 비둘기도 아주 먼 곳에서 정확하게 집을 찾아오는 새로 유명하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귀소본능을 가진 비둘기를 “전서구”로 활용하여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은 찾아왔고, 5천만 중 그 절반인 2천5백만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이동하며 귀성의 대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장편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문턱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핵가족화의 와중에서도 수천 년 역사의 뿌리가 깊게도 지탱되어 온 민족 유산으로서의 귀성 프로그램이다. 나라 안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민심이 뒤숭숭해 있어도 줄잡아 올 민초 2천5백만은 누가 뭐라 하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車 끌고,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객선을 타고, 핏줄 찾아 3만리를 마다 않고 집을 나설 것이다. 거친 강 물살을 차고 올라가는 연어들의 귀소본능과도 같은 대장정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때맞춰 두 달 만에 돌아온 망나니 금화조를 환영한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을까? 매일 아침 주었던 모이와 물, 채소. 그리고 잠자리는 어떻게 해결했던 것일까? 건강한 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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