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그곳
시간이 멈춘 그곳
  • 김희숙<수필가·원봉초 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6.09.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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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한낮, 블루라쿤의 아이들이 흙을 꼬챙이로 파며 햇살 아래 도란도란 모여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도 개의치 않은 듯 자기들만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아무 근심 없이 노는 그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블루라쿤, 그러나 모든 것이 있는 듯 행복해 보이는 브루라쿤. 자연과 햇살과 시간들이 즐비하게 펼쳐진 그곳에 소리 없이 열대의 나뭇잎이 지고 있었다. 물들지 못한 파란 낙엽이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속에 사슴 눈망울을 한 사람들이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나뭇잎 비를 아무렇지 않게 맞고 나는 그들을 지켜보며 묘한 기분에 가슴이 뛰었다. 두근거리는 나를 들여다본다.

눈뜨면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해서는 또 다음날 일을 걱정하며 헐떡이는 시간을 살았던 나를 돌아본다. 아는 이 없는 이국에서 낯선 시간 속을 고요히 걷는 내가 문득 생경하게 느껴진다. 무엇을 위해 그리 시간을 분할하고 공간을 토막 내며 숨 가쁘게 살았는가.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는가. 시간은 없는 것이다. 공간도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없는 것이 아니고 무한대로 존재하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리라. 시간과 공간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분류하고 구분하고 나누면서 우리는 괜시리 바빠지고 복잡해지고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생긴 것이리라. 그것이 없는 이 적막한 고요와 평화가 좋다.

점심을 먹고 고요한 쏭강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을 보며 카약을 탔다. 강줄기에 모든 생각을 다 내려놓고 유유히 흘러갔다. 카약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유럽의 젊은 청춘들이 강에 튜브를 띄워 놓고 한가롭게 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삶의 한낮이었던 젊은 시절, 살아 내느라 힘겨웠던 그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그 시절 왜 청춘을 즐기지 못했을까. 지금도 삶을 즐기면서 살지 못하고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쓸쓸해진다. 흐르는 강줄기를 굽어보며 내 청춘의 번잡했던 시간들을 수면위로 띄워 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날들을 즐길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디쯤 걷고 있는 걸까. 정오를 넘어 오후 세 시쯤 될까.

시간이 멈춘 그곳. 내 사십대의 찌는 여름날도 멈춘 시간 속에 놓고 돌아왔다. 다시금 그곳에 가면 인생의 세 시쯤에 했던 생각들을 들춰볼 수 있으리라. 먼 훗날에도 사십대의 날들이 그곳에 멈춰 있으리라.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발을 디딘다.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오가고 복잡한 거리에 복잡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의 빠른 말소리 또각이는 발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다시 시작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바쁘게 바쁘게 돌아가리라. 그리고 그 바쁜 삶을 살아내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면서 즐기리라. 내 삶의 저녁에 멈추어 돌아볼 때 세시는 잘 살았다고 끄덕일 수 있도록.

오라~ 삶이여! 오라~가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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