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나비
역설의 나비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6.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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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여름형 나비들이 우화하기 시작했어요. 호랑나비과의 대형 나비들이 특히 많이 보여요. 호랑나비과의 나비들은 식성이 별나 꼭 먹는 잎이 따로 있어요. 향기가 너무 짙어서 다른 벌레들이 싫어하는 운향과 나무이거나 산형과의 풀, 누린내 때문에 이름마저 누리장인 누리장나무. 아니면 독을 품고 있어서 다른 곤충들은 기피하는 쥐방울덩굴이나 족도리풀 같은 그런 것들을 먹어요. 그런데도 호랑나비과의 나비들에게선 향기가 나지요. 독을 먹고 향으로 뱉어내니 나비는 정말 놀라워요.

지난여름 산호랑나비 애벌레 한 마리를 키웠어요. 키웠다는 말은 틀려요. 키우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하잖아요. 돌보았다고 말해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때마다 먹이식물을 뜯어다가 주었으니 돌보았다고 쳐요.

순전히 호기심에서 시작된 애벌레 돌봄은 내게는 아주 큰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일이 되었어요. 밤낮으로 심지어 꿈으로 나는 애벌레가 있는 베란다에 들락거렸어요.

애벌레는 금방금방 컸어요. 세 쌍의 가슴다리로 꽃잎을 꼭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며 먹는 모습은 온종일 보아도 싫증 나지 않았어요. 동그란 네 쌍의 배다리를 움직여 기어다니는 모습도 귀여웠지요. 배 끝에 달린 한 쌍의 다리는 강력한 흡착 기능이 있어서 아무 데나 매달려 있을 수 있게 해요. 애벌레도 자세히 보니 구석구석 쓸모 있고 구석구석 이뻤어요. 아이잖아요. 아이는 모두 예뻐요.

어느 날 꽃 위에서 꼬물거리는 움직임이 보였어요. 새똥처럼 흑백의 얼룩이 있는 꼬물이, 바로 산호랑나비의 1령 애벌레였어요. 나는 분명 데려온 적 없는 아이인데 아마도 잎 뒷면에 붙어 있던 알이었나 봐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어디 한 군데 힘을 줘서 만질 수가 없어요. 힘준 내 손끝에 누군가가 다칠까 봐요. 그러자 손길이 부드러워졌어요. 덩달아 발길도 부드러워졌지요. 내 발끝에 상처 입은 아이들도 부지기수일 거예요. 모르고 지은 죄가 아마 한 더미는 될 거예요. 그래서 눈길마저 부드럽게 했어요. 그 또한 사납게 힘준 제 눈길에 누군가 다칠까 봐요.

호랑나비과의 애벌레들은 3령까지는 새똥 같아요. 그건 새똥을 흉내 내어 천적을 속이고자 함이지요. 노린재도 무당벌레도 새들도 잠자리도 모두 애벌레 먹는 걸 아주 좋아해요. 애벌레들의 생존율은 0.6~2%로 알 100개중에 나비가 되는 아이는 고작 한 마리래요. 아무튼 야생의 위험을 핑계 삼아 나는 애벌레들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청했어요.

5령이 되고 어느 날 묽은 물똥을 눈 애벌레는 번데기 되기 딱 좋은 장소를 찾아 하루쯤 몸을 웅크리고 전용상태에 들지요. 아마 그 순간 아름다운 껍질과 몸을 분리하는 걸 테지만 제 눈에는 엄숙한 기도 시간 같아요. 하루를 잘 보내게 해달라는 새벽기도처럼 용화와 우화를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는 기도의 시간. 묵언의 기도가 끝나야 명주실을 뽑아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허물을 벗어 번데기가 되지요.

번데기, 그 칠흑 같은 고립무원 속에서 애벌레는 제 속에 담겨진 가능성을 발현시킵니다.

세상과의 완벽한 결별.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골몰하는 시간. 애벌레의 엄격한 자기성찰의 시간이 그를 나비로 이끄는 것이리라는…. 독을 먹고 향을 풍기는 나비… 세상을 날기 위해 세상과 결별하는 나비… 역설의 나비.

아주 잠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의 교육이 온통 외부의 것에만 있지 자기 내부를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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