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느낌
가을이 오는 느낌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9.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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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무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면, 사람들은 빨리 가을이 왔으면 한다. 그렇지만 가실 줄 모르는 무더위에 가을이 올 조짐은 영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가면 여름이 가겠거니 하다가도, 더위에 시달리다 보면 여름이 정말 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이럴 때 주의력이 깊은 사람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아채곤 하는데, 무엇을 보고 그러는 것일까?

매미 소리가 부쩍 커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강정일당(姜靜一堂)도 부쩍 커진 매미 소리에서 가을이 왔음을 직감하였다.

 

가을 매미 소리(聽秋蟬)

萬木迎秋氣 (만목영추기)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沈吟感物性 (침음감물성)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 (임하독방황) 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매네


흔히 말하기를 가을날은 맑다고 한다. 단순히 비 오는 날이 적어서만은 아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여름빛과는 다른 느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달라진 빛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물의 이미지도 변모되게 마련이다.

먼저 시인의 눈에 가을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나무들이었다.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나무에서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부쩍 듬성듬성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비스듬하게 해가 비치는 것이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 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가을임을 느낀 것을 청각을 통해 확인하였으니, 해질 무렵 매미 소리가 부쩍 크게 들렸던 것이다.

매미가 우는 이유는 실상은 종족 번식을 위한 것이지만, 그 소리는 사람들에게 여름의 소리로 인식될 뿐이다. 주변 온도나 조도 차이 때문에 매미 종별로 우는 때가 다르지만, 매미 소리는 늦여름부터 유난히 크게 들리고, 초가을이면 아예 절규처럼 들리곤 한다.

이처럼 커진 매미 소리를 듣고, 그것도 하루를 마감하는 해질 무렵에 듣고, 시인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옴을 재삼 확인한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청명한 가을이 오면 반가운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만, 시인은 반가운 생각이 드는 대신,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한 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해 가는 사물의 천성(天性)을 새삼 깨닫고는, 깊은 상념에 빠져 홀로 숲 속을 마냥 서성이는 시인의 모습이 선연하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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