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앞에서
그리움 앞에서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6.09.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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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바람이 들었나 보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낮고 애절한 재즈만 골라 음반을 건다. 한낮은 아직 삼십 도를 기웃거리는데 와인색 블라우스를 꺼내 입는다. 며칠 징검다리 건너듯 내린 비가 가슴에 깊은 가을을 부려놓았다.

한여름 땡볕의 위력에도 내 삶을 채워준 책들을 정리한다. 두근거리던 문장들, 번개같은 시구, 사랑에 대한 열광, 망각, 이별, 아직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로 나를 성장하게 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리움이 배어 있는 전시 팸플릿. 덕수궁 석조전 앞 붉은 배롱나무 꽃처럼 뜨거웠던 “이중섭 백 년의 신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등 60여개의 소장처로부터 대여한 작품 200여점과 개인 소장품은 물론, 그의 친필 편지와 그의 작품이 실린 간행물들까지 모두 모아 전하는 기획전이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민족 시련기를 살아내야 했던 그의 모질고 고달팠던 삶들이 고스란히 풀려나온다.

관람객들은 굵은 선과 과감한 터치, 강렬한 색상으로 그려낸 소 그림들 앞에 가장 오래 서 있는 듯했다. 나는 작은 은지화 앞에서 걸음을 떼지 못했다. 유리 너머 불빛 아래 은박지의 질감과 어우러진 선들은 때론 천진한 아이의 웃음으로 꼬물대는 발가락으로 장난스레 얼굴을 맞댄 아버지와 아들의 다정함으로 부부의 사랑으로 변주되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딱 한 점 그린 자화상은 서른아홉의 중섭이 아니라 50대가 훌쩍 넘는 아저씨처럼 보인다. 혼자 삭여야 했던 아내를 향한 애절하고 뜨거운 사랑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를 건널 수 없는 강으로 데려갔다.

그를 두고 천재, 식민지시대 민족의 정체성과 자아를 회복시킨 화가라고도 하며 한편에선 지나치게 신화 속의 인물처럼 과장되었다는 평판도 있지만 우매한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예술과 인생을 타협하지 못하고 순순했던 그의 열정, 그리고 함께하지 못한 미완의 사랑과 쓸쓸함을 읽을 뿐.

전시실 한켠에는 관람객들에게 지금 떠오르는 그리움에게 편지를 쓰라는 코너가 있다. 그가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나는 한 줄도 적지 못한 채 빈 종이를 두고 나왔다.

죽기 전 그린 “절필작품/絶筆作必 먼 밖에서 어머니가 양동이를 이고 돌아오는 것도 모르고 어두운 창가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불행한 시대에 희생된 예술가 이중섭인 듯 아팠다.

마타리 꽃이 하늘거리는 구월. 바람에 젖은 마음을 따라 배낭을 챙겨볼까. 서귀포 이중섭거리, 1.5평짜리 작은 방 작고 초라하지만 짧으나마 중섭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품고 있을 그 집. 쓰지 못한 편지를 그곳에서 쓰고 싶다. 그리움에게로 시작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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