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천의 발
임재천의 발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09.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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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에세이스트>

-당대의 현실에 맞서 정직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


-오늘의 한국을 사진으로 발견하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가진 사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낸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위로의 찬가를 들려주는 사람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다큐멘터리 사진가 임재천의 ‘강원도’사진집에 부친 머리말에서 그를 소개한 부분입니다.

임재천은 ‘사진은 발로 찍는다’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작가이지요.

지난 7월의 끝자락에 서울 강남의 갤러리 ‘SPACE 22’에서 임재천의 50개 강원도 사진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작품마다 다가오는 느낌을 스마트폰에 짧게 메모를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올해 4월 동해시 이로동에서 찍은 작품에 대해선 “세숫대야 옆에 끼고 설렁설렁 어딜 가시나. 벚꽃이라도 듬뿍 담으셨나 보네”라고 같은 달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서 찍은 작품에 대해선 “산 위의 붉은 십자가는 호수에 붉은 찌를 던졌네”라고 메모했던 겁니다.

그날 거의 두 시간에 걸쳐 감상하느라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했지만 그가 그동안 내디뎠을 수많은 인고(忍苦)의 발걸음을 생각하니 다행히도 즐거운 마음이 앞섰던 시간이었죠.

갤러리를 나오면서 방명록에 간단하게 인사말을 남겼답니다.

“뚜벅뚜벅 걷는 그대의 길과 함께 우리나라의 사랑과 진실의 기록이 더욱 풍요해지길 바랍니다.”

청주 집에 돌아와 구입한 사진집을 찬찬히 펼쳐 보니, 그가 인사차 제게 써 준 말이 있더군요.

“사진, 사랑의 한 극점.”

스쳐 지나갔던 사진 작품들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어 스마트폰에 남겼던 다른 메모들을 읽어 봤습니다.

“스님 급히 어딜 가시나? 끌고 가는 캐리어가 중생이로다./배에선 멋 부리지 않아도 돼요. 오징어 만선(滿船)의 꿈만 꾸는 거죠./별들은 회전하고, 별 밭 아래 배추들은 꿈틀거리고./캐다 남은 석탄으로 땐 연기가 몽글몽글./산들의 파도가 바다의 파도를 뺨칠 수도 있다네./신선은 언제나 오시려나, 내 몸은 망부석처럼 굳어만 가는데./삶은 제각기라도, 저기 등대만 켜져 있으면 돼./훨훨 타오르는 횃불이 소원이고, 화룡(火龍)인거여./아바이, 갯배 타니 좋구먼요!/내일 일은 걱정 안 해. 들깨 요놈을 잘 말리는 게 우선이지./저 아래 무엇이 있구먼… 여보게, 그것도 번민여./이 바위는 왜 뒷짐을 짓게 만들까?/산의 속살엔 일상의 노동이 겹쳐져 있다네./흙길이 나뭇가지처럼 장쾌히 뻗어나가고 있어./선탄창(煽炭倉)의 국적은 모호하구먼./돌밭에서도 저 노인은 꽃을 찾네.”

한국의 오늘을 기록하고 싶은 임재천의 발은 이제 ‘부산’으로 옮겨졌더군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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