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 이지수<청주중앙초 사서교사>
  • 승인 2016.08.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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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한국이 싫어서’

제목을 따라서 읊다 보니 대략 12년 전쯤 어두컴컴한 독서실 한구석에서 불안함에 항거하듯 환한 전등불 밑에서 쭈그려 공부하던 때가 떠오른다. 좁디좁은 독서실 책상에 갇혀 나 혼자만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어둡고 축축한 곳에 핀 불온한 곰팡이 같다는 상상을 했었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걸 보니 난 그때 분명히 이 책의 제목처럼 한국이 싫었고,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거나 커다란 사건·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던 위험한 수험생이었다.

지금은 천운으로 시험에 통과해 전공을 살려 정식 사서교사로 발령받았으나 늘 이 자리가 마음의 부담이고 짐이다. 해마다 많은 학교에서 졸업생들이 원대한 꿈을 갖고 사회에 나오는데 열정을 가진 그들보다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도서 ‘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는 그때의 내 모습과 지금의 20대들을 반영하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기성세대들은 말한다. ‘지금의 실패는 네가 노력이 부족해서야’, 숨이 턱밑에 찰 때까지 달렸는데도 ‘고지가 바로 저긴데, 조금만 더 해봐’라고 외치고, ‘No pain, No gain!’이라며 오히려 고통을 즐기라 한다. 지금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부족이고 마인드 미달이 아닌데,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된다.

이 책을 다 읽고도 세상은 여전히 판타스틱하다고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말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난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라고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혈혈단신 호주로 떠나는 여주인공은 한국을 왜 떠나려 하느냐라는 질문에 두 마디로 요약한다. “한국이 싫어서”라고. in-서울 소재 대학교도 졸업했고 남자친구도 있고, 졸업하자마자 증권회사에도 취업해 성인의 평범한 삶을 사는 듯했던 여주인공은 결국 저 두 마디의 이유로 떠나는 것이 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그럼 그 결말은 대부분 동화에서처럼 “ ~ 그래서 주인공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 나면 좋으련만. 꼬일 대로 꼬여서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생리가 터지고,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창고 같은 하숙집을 비싸게 빌려 머물게 된다. 아르바이트와 어학원을 병행하고, 셰어하우스를 운영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호주에서 추방당할 뻔도 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잘 버텨낸다.

왜 여주인공은 영어를 다시 배워가며 그 먼 호주까지 갔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행복해지는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삶의 행복에 대해 주인공과 내가 똑같이 생각하는 곳을 발견했는데, 바로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었다. 둘의 성질은 다르지만 사람마다 자신이 행복함을 느끼는 요인은 각자 다양하다. 차곡차곡 준비해서 모아서 성취한 결과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순간순간을 즐기며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천편일률적으로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가족 등등 좋은 환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세워져 있는 행복이라는 기준에 있는 거였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도 점점 기성세대가 되어간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정형화된 틀에 아이들을 가둬놓고 날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지는 말자. 조금만 눈 돌리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미리 정해진 좁은 길을 향하라고 강요하는 그런 꼰대 같은 부모는 절대 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내가 이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난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새삼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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