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숙모 연가
외숙모 연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8.2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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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외숙모(外叔母), 경상도 사람들이 외아지매라 부르는 사람. 외삼촌이나 이모에 비해 살갑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여자. 가까운 친척이지만 왠지 조금은 멀어 보이는 이름. 그가 바로 외숙모입니다.

그래요. 외숙모는 외삼촌의 아내입니다. 어머니의 오빠나 남동생의 부인을 외숙모라 부르지요. 삼촌의 아내를 큰엄마, 작은 엄마라 부르는 것에 비하면 대접이 형편없죠. 지금은 삼촌·숙모보다 외삼촌·외숙모가 더 친숙하고 존재감이 크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외삼촌과 외숙모는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까마득한 존재였습니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고, 처가와 뒷간(화장실)은 멀수록 좋다 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래도 이모는 어머니 산바라지도 해주고, 어머니가 아프거나 돌아가시면 집안일을 돌보아주기도 해 애틋한 추억이 있지만, 외숙모는 대부분 그런 정서가 없지요. 그러나 저는 오늘 한 분뿐인 외숙모님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그분에 대한 연가입니다.

외숙모님은 안동 임하에 살 때 우리 집 바로 옆집에 살던 일가친척 누나였습니다. 소꿉친구 영희의 큰 언니였지요. 얼굴도 참하고 행실도 고와 어머님이 중매를 서서 초등학교 교사인 외삼촌의 아내가 되었고 내 외숙모가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5살 난 외아들과 두 살 된 막내딸을 보따리행상을 해서 키웠고, 아들을 사범학교에 보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게 한 엄하고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동문학과 글짓기지도에 미쳐 있는 남편과 미장원을 하던 시누이와 함께 살았지요.

부모님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장남인 저를 명문중학교에 합격시킬 요량으로 외삼촌이 재직하는 경주 천북초등학교로 전학을 보냈어요. 그렇게 안동 집을 떠나 2년간 경주에서 외가살이를 했지요. 외할머니가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야단을 치면 엄마가 보고 싶어, 집이 그리워 몰래 숨어 울면, 전학 왔다고 찝쩍거리는 아이들과 싸우다 들어오면 외숙모는 외할머니 몰래 찐 감자나 옥수수를 주며 “괜찮아 잘할 수 있지”하며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다시 2년 남짓 외갓집 더부살이를 했습니다. 그 무렵 외삼촌은 글짓기 지도교사로 명성을 쌓아 서울 유명사립초등학교로 초빙되셨고, 흑석동 언덕배기에 방 두 개 딸린 아담한 집을 장만해 살고 있었어요. 딸 셋의 엄마가 된 외숙모는 교사 박봉으로 시어머니와 다섯 식구를 건사하고 살았는데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성년이 된 저를 예전처럼 거두어 주었습니다.

스펙이 없는지라 낮에는 서적 외판원으로, 밤에는 외삼촌이 알선해준 과외교사 일을 하면서 하루살이처럼 살았지요. 흑석동에서 오가며 사귄 친구들과 술 마시며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자 어느 날 외숙모가 그러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공무원시험 한번 보도록 해, 좋은 공무원이 될 거야”라고. 그 말에 감전된 난 마음을 다잡고 몇 달 시험공부를 하여 충청북도공무원이 되었고, 이처럼 어엿한 일가를 이루고 살았으니 외숙모님의 은공이 참으로 큽니다.

외숙모님은 나보다 8살 위셨지만 그렇게 도량이 큰 어머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시골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을 내로라하는 학교 교장으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거목으로, 지극한 효자로 살도록 뒷받침한 열녀이며, 홀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긴 효부이며, 자식들을 모두 명문대학에 진학시켜 인기드라마 작가로 프리랜서로 교사로 사회에 기여하게 한 장한 어머니입니다.

그 착한 외숙모가 지금 파킨슨이란 얄궂은 병마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살만한데, 고작 71세밖에 안 되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야속하고 애통합니다.

하여 오늘도 자랑스러운 우리 외숙모님, 김시숙 여사님의 쾌차를 빌고 또 빕니다. 그립고 고마운 외숙모여, 이 세상 모든 외숙모들이여 부디 평안하시라.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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