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로서도 결격인 사람
‘경찰’로서도 결격인 사람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8.2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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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2008년 10월, 대한민국 공무원 백수십여명이 졸지에 옷을 벗게 된 ‘사건’이 있었다. 다들 멀쩡하게 현직에서 맡은 일에 열심이던 사람이었다. 짧게는 5년에서 10년, 길게는 십수년까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봉직하다가 갑자기 쫓겨난 사람들. 그들 중에는 사무관·서기관 등 3, 4, 5급 고위직까지 끼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 기관들이 보유한 정보는 기관별로 ‘따로’ 놀았다. 그러다 2000년을 전후해 갑자기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각 기관이 데이터를 공유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2008년 초 감사원은 국가 기간 전산망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대검찰청에 공문을 한 장 보내게 된다. 공문 제목은 추측건대 ‘공무원 결격 사유자 색출을 위한 범죄 전과 조회 협조의 건’.

이후 100여만명의 국가, 지방공무원의 명단과 대검찰청이 보유한 범죄 전과자 명단을 ‘크로스 체킹’하는 작업이 장기간 진행됐다.

그해 10월까지 계속된 이 작업에서 무려 100명 이상의 공무원 결격사유자가 색출됐다. 음주 뺑소니, 폭력이나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들이다. 음주 운전 사고자가 가장 많았다. 뺑소니를 치거나 대인 사고를 내 징역형을 받고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감사원은 이들의 범죄 사실을 각 소속 기관에 통보하고 ‘당연 퇴직’을 명령했다. 또 음주 운전 등 중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들을 징계 처분하도록 했다. 이 기간 동안 금고 이상의 범죄 사실이 적발돼 옷을 벗은 공무원들은 100여명, 정직·감봉 등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1000여명에 달했다.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가 1993년 음주 운전 사고를 내고도 경찰 신분을 밝히지 않아 징계를 모면한 사실이 드러났다. 야당 의원들이 추궁하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입으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강원지방경찰청 상황실장으로 재직하던 중 낮술을 먹고 운전하다 중앙선 침범 사고를 내는 바람에 경찰 조사를 받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상대 차량은 전파됐다. 그때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숨겨 징계를 모면했다.

당시 경감 계급장을 달았던 그는 불과 10년 만에 경정을 거쳐 총경으로 초특급 승진을 했다. 음주운전 사고로 징계를 받았다면 과연 이러한 초특급 승진이 가능했을까.

1994년 괴산경찰서에서 파면됐던 한 경찰관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인데 당시 경찰청에는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1 경찰서, 1 무능 경찰 퇴출’이라는 무지막지한 사정 바람이 불었었다.

숨진 경찰관은 운전 중 인도를 침범해 사람을 치는 사고를 내 졸지에 퇴출 대상자가 됐다. 음주 운전은 안 했지만 보도 침범이라는 ‘10대 중과실 사고’를 냈다는 게 퇴출 사유였다.

단순 보도 침범 사고가 빌미가 돼 파면을 당하고 자살한 경찰관. 또다른 한명은 음주 운전을 하다 중앙선 침범 사고를 내고, 민간인이라고 신분을 속여 징계를 모면하고서 경찰청장 후보자가 된 경찰관.

경찰 출신인 권은희 의원(국민의당)이 어제 이런 말을 했다. “(이 후보자는)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경찰 신분을 감추고자 허위진술까지 했다. 경찰청장은커녕 ‘경찰’로서도 결격인 사람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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