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의 미학
고요함의 미학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8.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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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 김태봉

고요함의 모습은 어떠할까? 세상의 모든 존재는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있고, 사람들의 마음도 예외가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었고, 그러한 마음의 경지를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당(唐)의 시인 상건(常建)은 시를 통해 고요함을 그려냈다.

파산사 뒤의 선원(題破山寺後禪院)

淸晨入古寺(청신입고사) 이른 새벽 옛 절에 찾아드니,
初日照高林(초일조고림) 아침 햇살이 숲 위를 비춘다.
曲逕通幽處(곡경통유처) 오솔길은 그윽한 곳으로 통하고,
禪房花木深(선방화목심) 선방둘레로는 꽃나무가 무성하다.
山光悅鳥性(산광열조성) 해 맑은 산 빛으로 새소리 즐겁고,
潭影空人心(담영공인심) 연못에 비친 그림자는 사람의 마음을 비우게 한다.
萬雷此俱寂(만뢰차구적) 세상 모든 소리 일시에 멎은 듯 고요한데,
惟餘鐘磬音(유여종경음) 오직 종소리 편경소리만 들려 올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고요함의 공간으로 절간을 꼽곤 한다. 절은 수행의 공간이고, 수행은 고요함을 수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대인 새벽에 파산사(破山寺)를 찾았다.

남제(南齊) 때 지어진, 오래된 절의 뒤뜰에 위치한 선방(禪房)은 정적 그 자체이다. 아침 해가 솟아 키 높은 나무숲을 비출 뿐, 소리라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통과하여 선방(禪房)에 들어서니, 그 주변은 온통 꽃과 나무가 무성할 대로 무성하다.

깊은 산 속 오래된 절 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지나야만 나타나는 곳, 그것도 우거진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곳, 이 선방(禪房)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산의 고운 빛은 새들의 품성을 즐겁게 하고, 연못 그림자는 사람의 마음을 비우게 한다. 역시 고요한 모습이다. 그러나 고요하다 해서 아무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떤 소리는 고요함의 느낌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이곳에서 멈추었지만, 예외가 있었으니, 종소리와 편경소리가 그것이다.

절간에 울리는 종소리와 편경소리는 결코 정적을 깨는 소리가 아니다. 그곳이 고요함의 공간임을 모든 소리에 경고하는 역할을 하는, 소리 아닌 소리인 것이다.

고요함 자체를 감각, 특히 청각으로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기재는 바로 소리이니, 오묘한 고요함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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