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혼불 자양영당(紫陽影堂)-3
현대인의 혼불 자양영당(紫陽影堂)-3
  • 여은희<제천시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6.08.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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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여은희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위치한 제천의병의 본거지인 자양영당의 건립 주도자는 습

재이소응(習齋李昭應)으로, 스승인 성재선생이 살아생전 주자, 우암, 화서의 영정을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례를 올리며 영당에 별도로 모시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을, 사후(死後) 영당 건립을 위해 장담불훤계(不?契)를 입의 하였다.

1901년부터 모아온 불훤계 자금과 의암 선생의 문인 한덕모ㆍ김기학 등의 참여로 자양 영당의 건립은 1906년 3월 초하루에 논의되어, 자단산(紫丹山) 남쪽 담계(潭溪) 가에 자양영당을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이듬해 1907년 9월에 완공되어 주자, 우암, 화서, 성재의 영정을 모셨다. 계획한지 7년 만의 일이었다.

그후, 의암, 습재를 추가로 배향하여 모두 6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20일 춘양제와 음력9월20일 추양제를 지내며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자양영당은 1984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었고, 을미의병 창의 100주년인 1995년 자양영당 성역화사업 일환으로 18,479㎡(5,590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새롭게 정비하여 유중교거택과 유인석의 거택을 비롯, 성재 유중교와 중암 김평묵이 중국 송ㆍ원대의 사적과 고려의 사적을 합편한 『송원화동사합편강목판목』이 보관된 장판각이 있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또한, 제천의병의 넋을 기리고자 조성한 사당 숭의사가 마련되었고, 이곳에는『호좌창의진』깃발과『조선말13도의군도총재의암유선생휘하제현신위』를 봉안하여 의암선생을 비롯한 13도 의병의 넋을 기리고자 매년 제천의병제 행사 시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더불어 『제천의병 전시관』이 마련되어 제천의병의 남산전투장면, 유생들의 처변삼사 논의 장면 등을 비롯하여 전기ㆍ중기ㆍ후기 의병의 활동상 및 유중교가 사용하던 거문고 자양금(紫陽琴)<충청북도 민속자료 제9호>, 유인석이 착용 하였던 심의, 의병관련 당시의 신문기사, 의병활동시 사용하였던 무기 등 의병후손들이 기증한 유품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의병의 활동상을 알리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여기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을 바친 제천의병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기리고 오늘날의 시민정신으로 승화시켜 정신교육의 도장으로 삼고자 『제천의병 기념탑』을 건립 하였다.

이렇듯 제천의병은 전기ㆍ중기ㆍ후기로 구분되는 모든 의병활동에 동참했으며 그 정신적인 지주가 바로 화서학파의 존화양이론 이며 본거지는 자양영당(자양(紫陽)은 주자를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로 주자의 별호)이라 할 수 있다.

의병은 말 그대로 의로운 존재이며 구국의 상징으로 바름을 실천하고, 그 바름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약속이기에,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가 지켜야 할 근본 덕목(德目)이다.

요즘의 세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이해관계에서는 머뭇거리며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않고 관망하며, 자신의 언행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이 마치 지혜 있는 것처럼 비치는 세상으로 제천의병은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의 성공과 패함은 애초부터 따지지도 않는 성패이둔(成敗利鈍)의 일념 하에 오직 의(義)와 도(道)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제천의병의 기상을 가슴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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