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머리는 누가 감겨 주나
옥수수 머리는 누가 감겨 주나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08.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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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몸을 키우는 옥수숫대가 사랑스럽다. 창가에 바짝 붙어 교실 안을 기웃거리는 화단의 옥수숫대를 바라보다가 즉석 시 문답을 했다.

옥수수 머리는 누가 감겨 주나/살랑 살랑 바람이 감겨주지
옥수수 이빨은 누가 닦아 주나/반짝 반짝 해님이 닦아 주지


누가 코흘리개 1학년이라 하였던가. 선창하면 제법 그럴듯한 답으로 행을 이어가는 아이들,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다. 시를 쓰면 마음이 맑아지고 행복하단다.

시를 쓸 때 아이들의 눈은 별처럼 반짝거린다. 입가엔 배시시 미소가 깔렸고 글을 쓰느라 꼬물거리는 작은 손은 살아있는 한 송이 꽃이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 백 편을 외우게 한다. 한 달에 한 번 좋은 시를 골라 감상한 후 외우기도 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도 갖는다. 박승우 시인의 동시 「백점 맞은 연못」이나 김은영 시인의 「번데기와 달팽이」는 아이들이 즐겨 외우는 동시다.

논술 교실에 오면 행복해진다는 아이들, 글쓰기는 대부분 아이가 싫어하는 수업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줄을 잇는다. 무엇 때문일까. 물론 방과 후에 하는 논술 수업엔 시험이 없다. 이따금 백일장에 참여하는 것 외엔 시험이라는 부담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롯이 작품 속 시적화자나 주인공 시점으로 젖어드는 것이다. 논술 교실에 들어오면 생각이 구불구불 파노라마 친다는 아이들, 이제는 들어서면서부터 즉석 시로 인사를 한다.



시계는 숫자들의 집 /선풍기는 바람의 집

칠판은 글자들의 집 /논술교실은 문장들의 집



아이들은 나의 오마주, 나는 날마다 스승을 만나러 간다. 솜처럼 맑고 순수한 아이들, 그들과 함께 착한 시를 외우고 그들과 함께 무지개 같은 세상을 꿈꾼다.

오늘은 아이들과 권문희 작가의 동화 『깜빡깜빡 도깨비』로 삶을 나눴다. 남의 집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아가 있다. 그날 받은 품삯 서푼을 도깨비에게 몽땅 빌려준 아이, 서푼을 갚았는데도 깜빡 잊고 날마다 꾼 돈이라며 갖고 오는 도깨비를 보면서 아이들은 말한다. “선생님, 『깜빡깜빡 도깨비』는 어리석은 도깨비가 아닐 거예요. 도깨비인 줄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가진 돈을 몽땅 빌려준 아이가 착해서 일부러 도와주려는 거예요. 도깨비가 아이에게 준 선물 중에 요술방망이도 있잖아요. 도깨비는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요술방망이로 만들어낼 거예요. 어쩌면 그 도깨비는 하늘나라에서 보낸 선녀일 거예요.”

논술문장의 기본 틀은 주장과 이유, 근거를 세우는 과정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이 정리한 명쾌한 대답이다.

아이들에게 그렇다면 정말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게 되느냐고 물었다.

속으로는 삐딱한 답을 정해놓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겐 나쁜 일을 한 사람들도 버젓이 잘 살더라는 말을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다.

“그렇죠.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마음이 즐거우니까 행복하게 살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마음이 괴로우니까 불행하게 살게 돼요.”

『깜빡깜빡 도깨비』를 읽고 ‘착하면 스스로 복을 받고 악하면 스스로 벌을 받는다’는 명언을 만들어낸 아이들 이들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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