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이다
덕분이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6.08.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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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요즈음 덥다는 말을 하루에 백번쯤은 하는 것 같다. 누구를 만나거나 통화를 해도 덥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이 더위를 핑계 삼아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어디를 간들 시원할까.

차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푸르다. 눈이 시원하다. 낯선 길 저쪽에 덩치가 좋은 아주 잘 생긴 소나무 길이 보인다. 그 솔숲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목적지를 정하고 나선 길이 아니므로 발길 닿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가 보기로 했다.

길을 가다 보니 숲 속의 헌책방 새한서점 팻말이 보인다.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숲 속의 헌책방, 마치 글쓰기에서 역발상처럼 신선했다. 도심에서도 외면당하는 서점이 찻길도 험한 오지에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찾아온다. 새것, 콘크리트에 염증이 난 도시인들의 휴식 같은 공간, 책방의 흙냄새 헌책에서 나는 그 퀴퀴한 냄새가 반갑다.

서점은 단양의 현곡리에서도 더 깊숙한 산중에 있다. 새한서점이란 표지판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속으로 숨어들면 파란 지붕이 보인다. 이런 곳에 집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서점이라니, 여정에서 오지를 실감한다.

몇 번이고 덧댄 벽과 담이 낡은 책장처럼 지난 시간을 보여준다. 이금석사장님은 얼굴에 미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헌책을 사랑하고 지키는 지킴이, 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어울린다. 그는 30년 넘게 새한서점을 지키고 있다. 노후를 고향인 제천에서 보내려고 했는데 그도 여의치 않아 현곡리에 자리를 잡았단다. 산골짜기 비탈에 바닥공사도 하지 않고 책꽂이를 만들어 책을 진열했다.

흙을 밟으며 책을 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마치 미로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같은, 재미있는 서점이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탔단다. 의도된 발상인지는 모르지만 색다른 여행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장소다. 코끝에 스미는 마른 냄새가 땅에서 나는 건지 책에서 나는 곰팡이 냄샌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새한서점은 산속에 있어 놀랍고 책의 양에 놀랍고 그 산중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이 놀랍다.

새한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방문한 다기보다는 숲 속의 서점이라는 이색적인 풍경에 끌려왔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몇 시간 숲 속을 산책 하듯 책을 보았다. 내 인생에 대한 갈등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아버지 서재에 있던 소설 대망을 읽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평소 읽고 싶었던 소설책 3권을 샀다.

사는 일도 새한서점처럼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나름대로 세상을 참 많이 보아 왔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더위를 핑계 삼아 길을 나서고 보니 또 다른 세상이 있다. 누가 감히 산속 오지에 서점을 열 생각을 해 보겠는가. 인식의 전환이다.

더위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지만 더위 덕분에 시원한 곳을 찾아 여행하기도 한다. 때문이 아니라 덕분인 것이다. 덥다 덥다 하면서도 말복이 지나갔고 백중이 지났다. 나머지 더운 날들을 숲 속 서점에서 사온 소설책을 읽으며 세상을 또 한 수 배워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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