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8.17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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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독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오랜 친구와 정든 이웃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는데도 왠지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동창회도 나가고 향우회도 나가고, 이런저런 친목계와 동호회에 가입해 친교와 취미활동을 하는데도 까닭 모를 고독이 밀려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고독하고, 눈 내리면 눈이 와서 고독합니다. 낙엽 지면 낙엽 따라, 해가 지면 해를 따라 고독해 집니다.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며 나름 즐겁게 사는데도 마음 한구석에선 문득문득 고독의 파도가 출렁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래요. 섬은 고독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고립과 단절, 격리와 불통의 삶을 살아가는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들이 바로 외딴섬들이지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년을 함께 살면서도 수인사도 없이 지내고, 옆집 노인이 고독사를 했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현대인들입니다.

발길에 차이는 게 사람인데, 그렇게 날마다 무리 속에 섞여 사는 사람들인데 스스로 외딴섬이 되어 고독하게 삽니다.

군중 속에 고독, 고독한 군중입니다. 왕래가 단절되고, 소통마저 끊기는 적막한 섬들이 오늘도 도처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김태인 시인은 ‘고독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능수버들처럼/ 늘 고독한 것이리라/ 가지가 없어/ 뿌리가 없어/ 물이 없어/ 쓸쓸해 하는 것이 아니리라/ 질보다 양을 쫓아/ 강으로만 달려가는/ 저 변해가는 개울물에게/ 삶이란 양으로만 채울 순 없어/ 당당하게 막아서지 못함에/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고/ 오늘도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너와 나 같은 하늘 아래 살기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능수버들처럼 무엇이 부족해서 고독한 게 아니라 무엇을 채우지 못해 고독의 늪에 빠집니다.

그 무엇이 안타까워 비틀거리며 사는 게 바로 인생이고 고독입니다.

고독(孤獨)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입니다. 하지만 고독은 사색과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기회의 창이기도 합니다.

고독은 종교인에게는 절대자와의 소통의 다리가 되고, 예술가에게는 명작과 명곡과 명화를 빚는 산실이 됩니다.

일본 작가 가와키타 요시노리는 개인과 무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고독 연습’을 하라고 타이릅니다. 가족과 학교와 직장과 이런저런 조직에 몸담으면서 평생을 무리 속에서 살지만 언젠가는 모두 혼자가 될 터이니, 불안이나 위협이 아닌 내면의 성장기회로 인식하는 고독 연습을 하라고 말입니다.

거미줄처럼 엮어 있는 현대사회의 수많은 연결고리가 인간을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그 수많은 연결고리를 하나둘씩 끊어내는 연습이, 마음을 비우고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는 연습이 바로 고독 연습입니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먼트 바우만은 정보사회의 진전이 접속의 과잉을 불러와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자아성찰이라는 고독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일갈했습니다.

접속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주는 따끔한 경종입니다.

아무튼 고독은 인생길에서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터널입니다. 터널 속은 비록 어두우나 통과하면 환한 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그대여, 고독에 지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말고 고독을 즐기는 강건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고독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참 평화를 얻기 바랍니다.

먹이를 찾아 밀림을 어슬렁거리는 표범처럼 저기 고독한 영혼들이 빌딩숲을 어슬렁거립니다.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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