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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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8.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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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읽기
▲ 정세근

오늘 점심도 방에서 때웠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직원 점심을 사주려다 다들 약속이 있다고 해서 덩그러니 나만 남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정신을 산만하지 않게 하고 잡일이라도 처리하려면 방에서 혼자 먹는 것이 제일 좋다. 밤에 놀기 바쁜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방도이기도 하다. 1주일치 식량 정도는 비축되어 있으니 배고픈 동료 서생의 구걸을 언제나 환영한다.

미국생활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이 점심문화였다. 다들 싸온다. 빵 문화니 더욱이 그렇게 될 수 있었겠지만 일터에서 잠깐 짬을 내서 도시락을 까먹는 것이 나와 맞았다. 덕분에 ‘9 to 5’로 여덟 시간 근무하니 더 좋다. 우리는 점심 1시간을 빼놓아 하루 여덟 시간 근무에 6시 퇴근이다. 1시간 만에 점심이 반드시 끝나지 않으니 남는 장사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 동네는 연구실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가끔은 밥을 한주먹 싸서 주머니에 넣어 오기도 한다. 멸치나 콩이 있으면 가운데 넣고 뭉치면 초간단 한 끼가 된다. 요즘은 1회용 밥도 있어 그 짓조차 안 해도 된다. 반찬은 젓갈 한 종지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다.

‘이러다 일찍 죽지~’ 하는 두려움과 처량함이 밀려올 때도 있으나 우리네 삶이 다 그렇다고 위안한다. 좋은 교수되기는 쉽지 않은 법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1회용 음식들이 방에 쌓이는데, 무슨 바(bar) 같은 것이 그런 거다. 견과류를 뭉쳐놓은 것 말이다. 요즘 것들은 그다지 달지 않게도 나오는 편이라서 허기를 달래는 데 편리하다. 그러다 미국 바 하나를 얻어 책상 위에 놓았는데 마침내 오늘 뜯게 되었다.

이 바에는 사연이 있다. 모 대학에서 과학기술의 윤리를 가르치는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파는 미국산 바에 가려놓은 것이 있어 뜯어보니 ‘유전자조작농산물이 아님’(non-GMO)이라는 표기였단다. 그래서 그 교수가 책임자를 불러 따졌더니, 우리나라에는 GMO에 대한 기준이 없어 수입된 상품에 그런 표기가 있으면 그것을 지워야 한다고 답변했단다. 하고 안 하는 것은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한 것을 굳이 지우라는 데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 그 교수의 요지였다. 음모론 냄새가 나서 머릿속에 깊이 담아두지 않았는데, 막상 직접 보니 감정이 야릇했다.

이 초콜릿 과일 너트 바에는 ‘유전자 조작을 안 했다’는 것과 ‘글루텐이 없다’(gluten free)라는 표시가 들어가 있었다. 진짜 과일로 만들었다든가, 섬유소가 많다든가 하는 표시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광고로 여길 수 있을 것 같고, 유전자조작이나 글루텐 건도 자랑으로 예쁘게 봐줄 수도 있는데도, 굳이 유전자 조작 건을 지우라는 우리 식약청의 사고가 신기했다.

식약청 홈페이지에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유전자변형생물체’또는 ‘유전자변형농산물’이라 하고 그 기술을 ‘유전자재조합’이라 부른다면서, “이와 같은 유전자재조합기술을 활용하여 재배·육성된 농산물·축산물·수산물·미생물 및 이를 원료로 하여 제조·가공한 식품(건강기능식품을 포함) 중 정부가 안전성을 평가하여 입증된 경우에만 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유전자변형식품이라 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입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식품의 명세를 굳이 왜 지워야 하는지 궁금하다.

혹여나 음모론처럼 우리네 음식이 모두 유전자변형식품에 해당하기 때문은 아닌지? 나야 어차피 모든 음식이 GMO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줄 알고 사는 맛 간 세대이지만,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젊은이는 무슨 마음으로 이 나라와 정부를 대할까 걱정된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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