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선물
숲의 선물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6.08.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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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장맛비가 쏟아진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망설임 없이 광릉 숲 예약을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유네스코 보전지역인 국립광릉수목원은 하루에 500명만 관람할 수 있는 예약제라서 쉽게 가볼 수가 없었다. 우산을 쓰고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우비까지 챙겨 아침 일찍 광릉수목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차를 달려 도착하니 관광버스를 비롯한 차들이 주차장에 즐비하다.

숲은 언제나 나를 다정하게 맞아준다. 숲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숲은 바람으로, 나는 미소로 정다운 대화를 나눈다. 첫 눈에 뜨인 소나무가 링거를 맞고 있다. 다가가서 어루만져주며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고령의 나이에 힘이 부친단다. 링거를 맞는 소나무가 어서 기운을 차려 푸른 몸을 보여 주길 바라며 미소를 보낸다.

담쟁이가 상수리나무를 열심히 기어오른다. 덩굴손으로 나무를 붙잡고 기어오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담쟁이가 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에서 생명의 끈질김과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그러나 남의 집에 둥지를 틀고 마음 편치 않은 새처럼 상수리나무를 휘감은 담쟁이가 애처롭다.

나는 어머니라는 나무에 잔뜩 들러붙어 어미를 힘들게 하는 담쟁이였다. 어머니에게 집안 살림과 세 녀석이나 되는 내 자식을 보살피는 힘든 일을 떠맡겼다. 평생 오직 딸의 행복을 위해 휘어지고 부러지면서도 딸이 업히도록 등을 내주신 어머니에게 죄송하여 눈물이 맺힌다. 담쟁이에게 몸을 내주는 내 어머니 같은 상수리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줄기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그늘에 움츠린 여린 나뭇가지들을 보듬어준다. 나무의 넉넉함이 이기적인 내 머리를 때린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도 나무들처럼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햇살을 나누어주는 넉넉함이 있으면 좋겠다. 여린 나무들이 감사함을 배우며 꿋꿋하게 자라 큰 나무가 되길 바란다.

다람쥐 한 마리가 내 길을 막는다. 자신들의 양식을 주워가는 사람들을 경계하느라 불안하지 않을까? 가진 자의 횡포는 자연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어 그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미안함에 다람쥐를 외면하고 더 깊은 숲을 향한다.

우거진 소나무 숲 벤치에 누워서 보는 하늘은 더욱 푸르고 맑은 샘물이다. 그리운 어머니가 내 마음에 솔향기를 가득 채워 주신다. 아궁이 앞에서 솔가지로 불을 때며 송편을 찌던 어머니 곁에서 나는 여덟 살 소녀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의 미소를 짓는다. 무미건조했던 삶에 이슬이 내린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면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정신적 피로를 해소해주어 우울증을 치료해준다.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를 준다. 숲의 공익적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하면 100조원이 넘는단다.

나는 오늘 숲에서 귀한 선물을 한아름 받았다. 숲과의 대화로 정신적 치유를 받았고, 하늘에 계신 그리운 어머니와 친구들을 만나 행복했다. 숲의 배려와 넉넉함도 배웠다. 숲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밝은 미소를 남기며 발길을 돌린다.

내가 사는 세상은 미세 먼지가 가득하여 숨을 쉬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매일 소름 돋는 사건 사고가 그치지 않는다. 생존경쟁으로 다툼이 치열한 도시 속으로 향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는 숲의 세상이 있어 행복한 작별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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