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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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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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윤 승 범 시인

또 한 해가 지나갑니다.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각종 메스컴에서 올해의 10대 뉴스를 내겁니다. 거기에 꼭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지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수식어입니다. 어느 한해 이 수식어가 따라 붙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했겠지요.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볼 때도 다사다난한 슬픔이 있었습니다. 아주 많았습니다.

추운 겨울 밤 유모차를 끌며 파지를 줍는 할머니,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서 굶고 병들어 죽은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된 노인의 시신, 양극화라는 단어를 넘어서 극단으로 치닫는 부익부 빈익빈에 치인 사람들,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집에 가두고 일을 나가서 불에 타 죽은 어린 아기들, 멀쩡히 외출 나갔다가 강간을 당하고 싸늘한 시체로 돌아 온 누이들, 돈 몇 10만원 때문에 염산을 뿌려대는 사회, 왜 오르는지도 모르면서 무섭게 치솟는 부동산 가격, 가만히 앉아서 졸부가 되거나 상대적 빈민이 되어 버리는 나라, 국가의 중차대한 일들은 뒤로 미룬 채 명패를 던지며 당권 싸움이나 벌이던 나리들, 로또나 도박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사회, 강대국의 힘에 눌리고 지레 눈치가 보여 '단 한 번도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는' 병력을 외국에 파병시키는 일들, FTA 반대도 많고 말도 많은 일을 밀실행정으로 밀어붙이는 일 등등 참 험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으면 백성들의 삶이 나아졌어야 할텐데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힘들다는 말만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삶이 고해(苦海)라는 말이 어쩜 그리도 딱 들어맞을 수가 있는지요.

학창 시절에 배웠던 수필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 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중에서-

우리도 그런 것들 때문에 슬펐으면 좋겠습니다.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같을 걸로 말입니다. 그저 돈 몇 푼 때문에 사네 죽네, 아귀처럼 죽이네 살리네, 더 갖네 마네, 되네 안되네, 맞네 안 맞네, 따네 잃네, 속이네 속였네 같은 것 말고 말입니다. 2006년 한 해가 저뭅니다. 이제 좀 더 풍요로운 정신적인 삶의 모습을 봤으면 하는 소망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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