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느리게
느리게 느리게
  • 김희숙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08.10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김희숙

귓바퀴를 파고드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진다. 짱짱한 오후의 태양은 작은 도시에 뜨거운 화살을 맹렬하게 쏘아대고 있다. 길가에 서 있는 배롱나무도 더위에 지쳐 팔을 벌린 채 헉헉거리고 그림자도 불볕에 데인 듯 오그라들었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만 바람과 몸을 섞는지 간간이 뒤척이고 있다.

여기는 항구의 도시 목포다. 어제 난생처음 이 도시에 발을 디뎠다. 이틀을 머물 예정으로. 첫날 유달산과 노적봉 삼학도를 돌고 근대사 박물관 그리고 문예 역사관을 돌아보았다.

작은 도시지만 돌아볼 거리들이 많다. 다양한 문화유산과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곳이다. 문예역사관은 음악, 미술, 문학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문학이면 문학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이라 자못 흥미로웠다.

근대사 박물관에는 과거의 모습뿐 아니라 현재의 모습까지 대비시켜 과거와 현재의 흐름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멈칫거렸다. 일제에 의한 우리 민족의 학살사가 담긴 사진들이 나를 흠칫 거리게 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강간한 후 죽임을 당해 내장이 밖으로 터져 나와 있는 여린 소녀의 사진, 목이 꺾여 뒤로 간 채 등과 맞닿은 머리에 눈을 뜨고 죽어 있는 여자, 배를 찔린 채 널브러진 임산부 사진, 구덩이를 파서 시체를 산처럼 쌓아 놓은 모습 등 아픈 역사가 액자 속에 가득 멈춰 있었다.

액자 속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니 눈이 시큰하고 울대가 들썩였다. 문득 덕혜옹주를 떠올렸다. 16살에 일본으로 끌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며 다 늙어서 고국 땅을 밟게 된 비운의 옹주. 그녀의 아린 삶을. 이 모든 것이 국가의 부재가 불러들인 결과이리라.

나는 지금 자연사 박물관에 서리된 느린 우체통 앞에서 이틀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 데스크에서 빈 엽서를 두 장 받아 왔다. 일 년 뒤의 내게 보내는 글을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그리고 일 년 뒤의 나의 조국에게도 편지를 쓰고자 한다. 요즘 사드 배치니 뭐니 해서 나라가 시끄럽다. 나는 정치니 이념이니 그런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진실로 내가 바라는 것은 정치가들이 우리 국민을 생각한 정치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라고. 민초들을 염두에 둔 정치를 구현했으면 한다고. 국가의 부재는 국민을 나락으로 몰아넣는다고. 다시는 액자 속에 걸려 있는 그런 아픈 역사가 없어야겠다고. 그리고 일 년 뒤의 내게 말한다. 자신의 목소리만을 기록하지 말고 주변의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살라고. 이제는 나만을 투영시켜 자위하는 글이 아니라 나의 돋보기로 세상의 아픈 사연도 확대시켜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라고.

간간이 바람이 분다. 열기를 품은 훈풍이라도 바람은 반갑다.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일 년이라는 시간을 미리 당겨서 살아본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사연과 어울리며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살아 내리라. 느리게 느리게 하루가 저물고 있다. 귀에 가득 고인 매미 소리 퍼내며 목포가 어두워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