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길을 따라 대륙을 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길을 따라 대륙을 가다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6.08.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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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하략)’로 시작되는 헌법 전문을 우리는 사회시간에 배워서 잘 알고 있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뿌리와 이념과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존재 목적과 국민의 의무와 권리까지 알게 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필자는 지난달 11일부터 16일까지 5박6일 동안 충북남부보훈지청 주관으로 대한민국의 뿌리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유적지를 답사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흔적을 돌아보게 됐다.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세웠고, 여러 곳의 임시정부가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통합됐다. 1919년 4월 13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무려 27년간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기약 없는 독립 투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방문하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프랑스 조계지 안에 있었던 상하이에서 5번째이자 마지막 청사 건물인 마당로 보경리 4호 청사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은 1884년 갑신정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무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은 35년 만의 결실로 볼 수 있다. 그리고 1907년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에서 추진했던 민주공화국을 추구한 선각자들의 노력과 3·1운동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의 독립을 갈망하던 주권 의식의 표상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임시정부의 구성은 정식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정부였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표상이다.

27년간의 임시정부 역사는 엄청난 변화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본이 망해야만 우리가 독립할 수 있는 역학관계에서 망해야 할 일본은 오히려 부강해지고, 점점 더 강성해 져서 만주 대륙과 중국까지도 점령하고, 미국을 침략해 세계를 제패하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일본은 망할 것이라는 기대와 마침내 우리가 독립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한 독립 운동가들의 그 혜안과 소망과 인내와 노력에 가슴 속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3년 동안의 상하이 시대는 “일백만 중국의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는 장제스의 찬사를 받은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로 막을 내리고 피난의 길을 떠나야 했다. 그 후 1940년 충칭에 정착할 때까지 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으로 3만리 먼 길을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 중일전쟁의 와중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트럭과 장비 등을 제공해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중국 국민당 정부에 감사한다.

특히 충칭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건물의 규모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청사 건물보다 더 크다는 가이드의 말에 국민당 정부가 미래 대한민국이 세계를 주도할 나라가 될 것을 예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 임시정부 사적지를 답사하는 내내 역사의 현장마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염원하며 희생하신 선열들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기약 없는 독립운동과 아무런 대가도 없이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지까지 함께 고생한 흔적들을 찾아보면서 선열들의 희생으로 현재 우리가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음에 거듭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아울러 선열들의 독립과 광복이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으로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것이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느끼고 하루속히 평화적인 통일을 이뤄 선열들이 소망한 완전한 독립과 행복한 조국을 만드는데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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