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단상 그리고 전기요금 누진제
올림픽 단상 그리고 전기요금 누진제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8.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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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리우올림픽이 아직은 무난하게 치러지고 있다. 아니 단지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뛰어 넘어 인류의 스포츠 대제전의 명성에 걸맞게 지구촌을 들썩이고 있다.

남미 대륙과 한반도의 시차 탓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인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의 선전은 이어지고 있고, 그런대로 목표인 10위권 진입을 달성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이 가상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목을 매는 이러한 순위 경쟁의 도드라짐이 이번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면서 은메달이라는 발군의 성적에도 눈물짓는 안타까움이 거듭되고 있음이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훈련장소인 태릉이나 진천선수촌에서는 스포츠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의 한 신문기사를 통해 알았다.

이유가 인기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에 대한 얘기만 온통 도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하안거에 용맹정진하다 잠시 졸음에 빠진 선승에게 내려진 죽비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우리가 일희일비하는 모든 결과에는 각기 치열하거나 그렇지 못한 과정의 소중함이 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당연하듯 관중도 찾지 않는 소위 효자종목에서 금메달을 타내기라도 하면 그 찬사의 폭풍이 휘몰아치다가 시간이 흐르면 관심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은 졸렬하기 그지없다.

8연패의 기적 같은 드라마를 연출하거나, 지난 올림픽의 설욕을 탈환한 남녀 양궁 단체전의 우승의 찬란함에는 얼마나 많은 시위 당김이라는 과정의 피눈물이 있었는지 상상조차 하는 일반 국민은 몇이나 될까. 하물며 금메달을 놓치면 만고역적이 되고 말 것이라는 선수들의 살 떨리는 중압감을 헤아릴 이는 또 얼마나 될까.

며칠째 계속되는 폭염에 지칠 대로 지친 서민들을 살 떨리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하나가 전기요금 누진제이다.

“에어컨을 갖고 있는 집이 부자가 아니다. 마음껏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집이 부자”라는 한탄이 나오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개발 독재시대인 1973년 처음 도입됐다.

오일쇼크라는, 지금은 생소한 악재를 버티기 위해 생각해낸 고육지책이 가정용 전기의 소비 억제라는 강제성이었고, 산업용은 예외가 되면서 개인의 행복은 무시되는 불평등과 부당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43년이 흐른 지금, 폭염에 허덕이는 서민은 누진세 폭탄의 두려움이 겹치면서 끙끙 앓고 있는 사이, 대기업의 전기 생산 원가 이하의 혜택에 희생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전기 사용량의 54%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 그 가운데 상위 1%의 대기업이 64%를 써버리는 현실에서 문명의 혜택을 편하게 누리지 못하는 가정은 열불이 날 지경이다.

“자본에서 생성되는 자본의 고유한 욕구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라고 착각한다. 자본은 새로운 초월성, 새로운 예속의 형식이다. 우리는 삶이 어떤 외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오직 삶 자체로 머물러 있는 차원, 즉 삶의 내재성에서 다시 추방당한다”라는 한병철 의 심리정치에서의 주장이 새삼 주목된다.

1등만 인정하고 과정은 무시되는 나라. 은메달을 차지하고도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세계 2위의 한국 선수의 눈물은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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