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6.08.0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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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여름 숲속은 온갖 날 것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풀들은 태양에 씨앗들을 단련시키고요. 지금은 꽃의 파업 시기라 봄 내내 꽃의 수분을 돕던 나비들도 모처럼 여름 단잠에 들지요. 그 숲을 거위벌레나 노린재나 딱정벌레들이 채워줍니다. 작은 곤충들이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부지런히 사랑하고 알을 낳습니다.

나뭇잎 뒤에는 노린재들과 풀잠자리의 알이 붙어 있고 나뭇잎을 빙 돌아가며 단체급식 중인 애벌레들도 보입니다. 거위벌레 어미의 잎 말이 공사현장도 볼 수 있어요. 알을 싼 잎을 가늘고 작은 여섯 발로 꼭꼭 다져가며 단단히 말아 올리는 걸 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엄중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들은 좀체 대충하는 법이 없지요. 그들은 좀체 머뭇거리지 않아요. 거위벌레 어미는 잎말이 공사를 끝내고도 한참을 떠나지 못합니다.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지며 새끼가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염려하고 당부합니다. 어미 마음이야 다 똑같지요. 곤충들 덕에 여름 숲은 활기로 가득합니다.

지구 상에 300만 종이 넘는다는 곤충. 나는 매일 내 평생 처음 보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이렇게나 세상에 무심했던가 이렇게나 세상에 무지했던가 하는 자책들이 밀려오지요.

언젠가 말했듯이 나의 무심함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가장 큰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이미 내 안에 들어왔고 더는 그들에 대해 무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초기의 곤충들은 몸집이 아주 컸지만 약 1억5000만년전 그들은 작아지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새가 등장하는 시기와도 일치하지요. 새와 그렇게 큰 몸으로 한 하늘을 사용하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또 그 무렵 지구의 산소농도가 점점 옅어졌습니다. 곤충들은 우리처럼 들숨 날숨의 적극적인 호흡을 하지 않고 산소를 몸속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호흡하기 때문에 산소농도가 옅어지면 큰 몸 구석까지 산소를 보내는 일이 어렵답니다.

작은 체구의 이점은 수많은 생태적 틈새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집이 작아서 어느 틈에서라도 살 수 있고 또 작은 몸집은 포식자를 배불릴 수 없어서 얼마간 안전을 확보하기도 했지요. 그들은 각자 세상을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여 되도록 경쟁하지 않고 비켜가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꼬마잠자리의 서식처가 우리 지역에 있다는 걸 얼마 전에나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훼손되고 난 뒤였습니다. 꼬마잠자리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잠자리로 불과 2센티도 안 되는 작은 아이랍니다. 그 질긴 생명력을 믿기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휴일마다 찾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작지만 분명한 존재감. 작은 틈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작은 곤충들 덕에 지구라는 거대한 댐은 물이 새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점점 사라져 조그마한 틈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일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재앙임에 분명합니다. 꼬마잠자리가 채우며 살았던 그 틈이 두려운 까닭입니다.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손끝에 올립니다. 그렇게 손잡고 나면 우리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나는 금방 그들의 편이 됩니다.

그래서 애지중지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다가 숲으로 돌려보냅니다. 사랑하되 가지지 않는 것, 나도 이제 사랑하는 법쯤은 아는 나이이라 그들을 함부로 붙들지 않습니다. 너무 작아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곤충들 덕분에 내 삶은 옹달샘처럼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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