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이별
사막의 이별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8.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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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 김태봉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중국의 서북 지방은 거의 사막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실크로드라고 해서 탐사나 관광 코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삭막하고 광활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임지를 받아 떠나가는 경우, 그 송별은 어떤 송별보다도 애틋할 수밖에 없었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어느 날 사막 지역으로 부임해 떠나가는 친구를 어느 객사에서 보내고 있었다.

 

안서로 가는 원이를 보내며(送元二使安西)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渭城) 아침 비 가벼운 먼지를 적시는데,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객사 앞 푸릇푸릇 버들 빛이 새롭구나.
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게 다시 술 한 잔 권하노니,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 나서면 친구도 없으리


위성(渭城)은 진(秦)의 수도였던 함양(咸陽)을 달리 부른 것으로, 당시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에서 서쪽으로 30㎣ 위치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황하(黃河)의 지류인 위수(渭水)가 근처를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당(唐)나라 당시 이곳은 서쪽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던 곳이었다.

지역 특성상 이곳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하고, 따라서 먼지가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곳에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그래서 풀풀 날던 먼지가 착 가라앉고 일지 않는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여관 앞마당 버드나무도 부쩍 파릇해진 모습이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 일어날 조짐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별이다. 그것도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으로 떠나는 친구와의 애틋한 이별이다. 비는 이별을 슬퍼하는 눈물이자, 이별의 길을 차분히 적시어 주는 진정제이기도 하였다.

또한 버드나무는 이별을 함께 아쉬워해 주는 따뜻한 이웃이었다. 이토록 애틋한 이별의 자리에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떠나가는 친구에게 술 한 잔을 더 권한다. 그 이유는 그 자리를 떠나서 곧 사막으로 들어가게 되면, 친구라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술 한 잔 권할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애틋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별이 있다. 그중에는 짧고 가벼운 이별도 있지만, 길고 무거운 이별도 많이 있다. 늘 곁에서 동고동락하던 가까운 사람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할 때, 사람의 마음은 황망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떠나가는 곳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라면 더 말할 나위조차 없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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