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생일(2)
아줌마의 생일(2)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6.08.0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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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미

그리고 유난히 착실하고 잘생겼던 큰 아재가 죽은 그 여름의 이야기도 하였다. 아줌마의 입을 통해 듣는 건 처음이었다. 고작 스물의 꽃 같은 나이였다. 3남매의 기둥이자 희망이었다. 3주 훈련만 거치면 되는 군 복무의 시작을 앞두고 동생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왔는데 만나지 못했다. 먼 길 보러 왔으니 점심만 사 먹이고 바로 들여보내겠다는 간절한 전화에도, 공원이 달랑 둘인 작은 가내 공장 사장은 미싱 시다를 내보내 주지 않았다. 그 전화가 큰 오빠와의 마지막이었다. 3주의 훈련 마지막 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빗길 사고가 났다. 그렇게 드넓은 하늘 아래 피붙이라고는 이제 달랑 남매만 남게 되었다.

하얀 공원 묘원의 모든 것들이 숨죽이고 아줌마의 사연을 듣고 있었다.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세상에서 누린 게 얼마나 많은지 미안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무하지 않은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거듭되는 삶의 아픔에도 저만하게 마음을 잡고 어린 아들에게 뿌리를 더듬어 가르치려는 아줌마의 모습이 새삼스레 강인해 보이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큰딸은 이제 일자리를 잡아 독립하였고, 아픈 손인 둘째 딸은 만 20세가 되어 주민 센터의 복지사와 상담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이제 이 녀석만 키우면 된다고, 혼자 꾸리는 힘겨운 살림에도 아들에게 쏟는 정성이 유난하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명력과 미래를 향한 희망이 하얀 눈에 반사되는 햇살처럼 빛났다. 하늘에 계신 아줌마의 부모님, 이제는 아줌마에게 축복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야기를 들은 주위의 모든 것들이 한마음으로 그녀의 앞날을 축복해 주길 바랐다. 정말 ‘축복’이라는 단어가 절실하였다.

아줌마가 다녀간 며칠 후, 좀 일찍 퇴근하여 잠시 앉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 아재다. 처음 있는 일이다. 심상치 않은 것이다. 아줌마의 둘째 딸이 낙화하였다. 두 번째 상담이 예정된 날 아침이었다. 내내 자기 속에서 홀로였던 아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우리 짐작보다 더 두려웠던가 보다. 아이의 빈소는 겨울의 찬 공기처럼 썰렁하였다. 나는 위로할 말이 없었다. 눈물도 없이 건들면 부서질 듯 마른 꽃잎처럼 망연하게 앉은 아줌마 옆에서 그저 앉아만 있었다. 하느님,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어디까지 하실 건가요?

나는 그녀가 생일 때마다 몇 날을 웃고 울고 하는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항상 그녀 옆에 멀지 않게 있었지만, 충분히 가깝지는 않아서 그녀의 속 삶이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일 년에 한 번 만날 때조차도 무거운 삶을 가볍게 농담하며 소주 한 잔을 맛깔나게 부딪는 재주가 없으니, 멀고도 가까운 피붙이이자 친구로 나는 너무도 부족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매년 생일 아침이 되면 직접 가서 미역국을 끓여 줘야 하는데 미안하다,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내가 감히 무엇을 짐작하겠는가? 그 산에 들어 가보지 않았다면 그 첩첩한 산중의 깊은 적막을 어찌 알겠는가? 인생이 초콜릿 상자와 같다면 그녀가 집어든 초콜릿은 어떤 것인가?

오늘, 생일 축하한다며 벌건 낮부터 찾아와 잔을 부딪으며 흐드러지게 웃어주는 친구가 옆에 있다니 너무도 다행이다. 그런 마음은 전하지 못하고 술 많이 하면 몸 상한다고 잔소리를 하고 짧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항상 그렇게밖에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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