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50>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5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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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천주교 聖人의 참된 숨결 고스란히

▲ 한국 최초의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생가터. 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 '솔뫼'는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한국 최초의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로 충청도 내포 한가운데 있는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일곱 살까지 살았던 곳이다. 이곳 옹기 토굴에서 황사영이 백서를 집필했고, 1856년에는 최초의 서구식 학교인 신학당이 세워졌다. 장주기의 집에 세워진 신학당에는 학생 열 명에 두 신부가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배론에서 집주인이었던 장주기와 두 선교사 신부가 잡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목자 잃은 양떼처럼 신학당 역시 폐쇄되고 말았다. 내포는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 일컫는 곳으로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들이던 곳이다. 내포를 비롯한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또는 천주교 문화를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된 실학사상과 서학은 내포 선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 ▲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세운 기념비.

김대건 신부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그의 가문은 내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9대 선조 김의직이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워 가문은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고,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그의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김대건 신부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은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그후 증조부 김진후도 입교하면서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자리매김시켰다. 잦은 박해로 그의 가족들은 여러 차례 투옥되어 고문을 받다가 순교했다.

 솔뫼 성지

솔뫼성지에 도착하면 잘 정돈된 잔디밭이 보이고, 나지막한 언덕 위에 소나무 숲이 보인다. 잘 정돈된 잔디밭이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터다. 당시 김씨 일가가 살던 집은 99칸이나 되는 큰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우물과 집터만 남아 있다.

솔뫼에서 대대로 명망이 높았던 가문이었으나 증조부가 15년 옥중 생활을 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후에는 신앙을 지키며 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1845년 마카오로 유학을 간 김대건은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어 그해 10월 귀국했다. 귀국 후 첫 사목지를 '은이 마을'로 정한 뒤 용인 일대에서 전교를 시작한 김대건은 이듬해 9월 새남터에서 25세 나이에 순교했다.

30년 동안 4대에 걸쳐 순교자 배출
1814년 김진후로부터 김대건 신부까지 30여년 동안 김씨 일가는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했다.

1946년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맞아 '솔뫼 성지'는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념비를 세우고, 생가 터를 매입하여 김대건 성인의 동상과 탑을 건립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합덕본당 박노열 신부는 해마다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여 오늘의 한국 성지순례 신심을 정착시켰다.

   
▲ 성지내 성가자상.

1998년 충청남도 지정문화재로 지정

마침내 1977년 국가의 지원으로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를 확보하고, 수차례 생가복원 사업계획을 수립했으나 실천하지 못했으나 1998년 생가지를 충청남도가 지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하면서 지자체 지원과 고증을 받고, 2004년에 생가 안채를 복원했다.

생가터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솔밭 끝에 우뚝 서 있다. 생가터 오른편 십자가의 길, 기도를 길 따라서 1 처에서 14처를 지나 성당에 다다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기까지 과정을 그림을 통해 야외 기도처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잘 정돈된 기념관은 내포에서 하느님을 믿다가 순교한 사람들의 신앙과 성덕을 오늘날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건립한 곳이다.

1982년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고,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지난 2004년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복원했다.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의 기념관을 건립해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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