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풍경
흔한 풍경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08.0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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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나는 이 구불구불한 옛길이 좋다. 플라타너스 가로수인 이 길은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반긴다.

헐벗었던 나무가 봄이 되면 연둣빛 새싹을 달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알려준다.

따뜻한 볕이 가로수들을 열심히 가꾸는 여름이 오면 나무들은 어느새 씩씩한 청년의 모습으로 서 있다. 지나는 이들에게는 청량함이다.

또 가을이 오면 나무들은 어느새 화려한 빛깔로 치장하고 지나는 나그네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화려했던 나뭇잎들도 계절이 깊어 가면서 하나 둘 여행갈 채비를 한다. 바짝 마른 잎은 날개라도 단 것처럼 이리저리 떠다니기도 하고 갈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떼 지어 오소소 굴러다니기도 한다.

미련없이 잎들을 떠나보내는 나무의 단호함에서 우리는 삶의 철학을 배우는 계절임을 실감한다.

가로수의 겨울은 더없이 경건하다. 매서운 고추바람도 차들이 일으키는 날 바람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나무는 꿋꿋하다.

한없는 침묵으로 가로수들은 그렇게 나약한 사람들에게 수없는 말을 전하고 있다. 때때로 오래된 것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베푼다.

옛길 옆으로는 4차선의 새 길이 있다. 나도 가끔 시간에 쫓기는 날은 이용하기도 한다. 새 길은 훤하게 뚫려 있어 큰 차 작은 차 할 것 없이 빛의 속도라도 따라잡을 양 달린다.

그러다 보니 교통사고 사망 동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동물들의 서식지인 산을 반으로 잘라 놓고도 우리는 그들의 마음은 생각지 않는다. 동물들에겐 매일같이 다니던 길이었을 것이다.

사람만이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동물들은 생각지도 않았다. 조심도 하지 않는다. 사람의 길을 나온 것은 온전히 동물들의 잘못이라며 죄책감도 없다.

몇 년 전 옛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가로수가 푸른 계절의 어느 날이었다.

우거진 가로수 길을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 저만치 앞에서 너구리가족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순간 비상등을 켜고 차를 멈췄다. 나도 너구리 가족도 모두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맨 앞과 뒤로 어른 너구리가 그 가운데는 3마리의 새끼 너구리가 걷고 있었다. 너구리 가족이 다 지나가도록 다행히 차들은 오지 않았다.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내내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그들의 생명을 염려하면서도 순간 신비롭기만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곳을 지날 때면 속력을 줄이고 두리번두리번 거린다. 길섶 어딘가에서 너구리 가족이 지켜보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머리를 깊게 숙이고 푸른 손을 흔들며 마중하는 가로수가 더없이 정겹게 다가온다.

길을 나서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이 옛길이 사라지지 않기를.

그리하여 나무가 우거진 많은 옛길이 ‘흔한 풍경’이 될 수 있기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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