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교단의 충돌
김영란법과 교단의 충돌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8.01 1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주부 김미숙씨(46)는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추석을 앞두고 초등학생 아들, 딸의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TV 뉴스에서 나오는 ‘김영란법’을 알아보니 대가성만 없으면 5만원 짜리 선물을 해도 된다고 한다. 그동안 선생님에게 선물하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김씨.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부담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일선 교육청 직원 박모씨는 다음 달 자녀 혼사를 앞둔 직장 상사에게 낼 축의금 액수를 놓고 머리를 굴리고 있다. 종전까지는 교육청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5만원까지가 한도였는데 새로 시행되는 김영란 법에는 10만원까지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사는 자신의 인사 평정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박씨는 비록 그 상사의 혼사 날짜가 법 시행 이전이긴 하지만 무조건 10만 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괜히 5만원 아끼려다 승진 점수 손해 볼까 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이 9월 28일로 다가오면서 일선 교육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김영란법은 ‘사교·의례·부조 등의 목적이 아닌 경우 직무 관련성이 있는 공직자, 교사 등에게 3만원 이하의 식사 접대와 5만원 이하의 선물, 10만원 이하의 부조금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직무관련성이 있는 상대방이라도 사교·의례 등의 목적이라면 3만원의 식사 접대와 5만원의 선물, 10만원까지의 부조금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김영란법이 정한 직무 관련성 공무원들의 금품 및 선물 수수 허용 상한선이 교육계의 기존 허용 한도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충남교육청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교육청의 공무원행동강령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 선물 수수 허용 한도액을 3만원으로, 경조사비 허용액은 5만원으로 정해놓고 있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는 이 강령을 발판으로 강도 높은 청렴 캠페인을 전개 한 결과 수년전 부터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의 ‘선물 안주고 안받기’가 정착된 상황. 교직 사회 역시 꾸준한 부패 근절 노력으로 부패 지수가 크게 낮아지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은 교육공무원 행동강령보다 더 ‘관대하게’ 금품·선물 수수 한도액을 올려버렸다. 실제 일선 교직원들 사이에선 ‘김영란법이 부조금 부담액만 2배로 올려놓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새 법은 지금까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또는 눈치 봐가면서 몰래 전했던 선물을 이젠 5만원 한도 내에선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직무 관련성이 없으니 주셔도 됩니다”라며 주머니를 벌리는 선생님들이야 없겠지만, 자식 맡겨놓은 ‘죄인’인 학부모들로선 늘 ‘을(乙)’ 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 주는 게 당연했던 선물을 5만원까지는 줘도 된다고 허용한 이상한 법, 부조금을 지금의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두 배 늘려놓은 법.

“5만원 짜리 선물 받았다고 아이들 성적 조작할 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학교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부정을) 가려낼 수 있게 해야죠. 지금의 강령만으로 충분한 ‘교단’을 김영란법으로 다스리려 한 발상이 잘못 아니겠어요?”

한 일선 교장의 넋두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