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사유 불능에 빠져 있나요?
당신도 혹시 사유 불능에 빠져 있나요?
  • 이현경<청주청원署 여성청소년계 경감>
  • 승인 2016.08.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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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이현경

1961년 이스라엘의 한 재판정,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재판이 열렸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고 학살한 죄, 전쟁을 일으킨 죄 등 죄가 15가지가 넘었다. 다른 모든 전범들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아이히만은 달랐다. 놀랍게도 칸트의 정언명령을 들먹이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난 명령에 따랐을 뿐이요, 무죄요.”

칸트가 들었으면 시쳇말로 깜짝 놀랐을 것이다. 칸트의 일반적인 원칙은 인류의 보편적인 법의 원칙을 말한 것임에도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이해했다.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아이히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죄는 ‘사유의 불능성’, 그 가운데서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무능함이다.”

나도 사유의 불능성에 빠져 있지는 않은 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괜히 휘말리면 골치 아프다고, 남의 아픔을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주변을 돌아보게끔 하는 명언이었다.

올 초 연이어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로 인해 많이 불편했다.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미지가 상상돼 한동안 나도 잠을 못 이뤘다. 특히 이와 관련한 부서에 근무하다 보니 관련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됐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를 직면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대받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주변에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가정 내 문제로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대책과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이기는 하다. 그래도 주변에서 인식하게 되면 가해자의 행동양식이 완화되고, 위축됐던 피해자의 심리가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찰, NGO단체나 각종 관련 기관이 이를 등한시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희망적인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남의 가정사로 취급받던 것이 이제 점차 사회문제로 인식돼 신고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아동학대가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밝혀지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고자에게 최대 20억원의 포상금과 최대 2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되는 등 금전적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물론 오인신고도 많고 과잉신고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결코 바디비지니스라 볼게 아니라 남을 일부러 해하기 위한 신고가 아니라면 안전한 사회를 일궈내기 위한 초석으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히이만처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당시 자기가 속한 사회의 상식에 따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사유불능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낫다.

나의 후손은 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은 번거롭더라도 내 주변을 살펴보고 이런 위험요소를 점검해 보자. 내 주변에 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 후손에게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우문을 던지겠다. 당신도 혹시 사유 불능에 빠져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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