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담배
어머니와 담배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6.08.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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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사내아이들 여러 명이 허리를 구부리고 슬금슬금 나무 뒤로 기어들어간다. 잠시 후 나뭇가지 사이로 자욱한 연기가 새벽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아마도 녀석들이 옹기종기 쭈그려 앉아 담배를 급하게 피워대는 모양이다. 잠시 후면 아이들은 우르르 기어 나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교복 바지에 묻은 검불들과 흙먼지를 툭툭 털며 키득거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오늘은 녀석들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은 날이다. 자우룩한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단 한 사람 사회적인 통념을 들이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의 어머니시다. 몇 해 전 큰 수술을 하신 후 건강을 생각해서 금연을 종용하던 가족들의 바람에도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살겠냐며 꿋꿋하게 담배연기를 허공에 날리는 어머니가 반갑기도 하고 내심 그런 어머니에게 응원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담배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담배를 피울 줄도 모르지만 그 지독한 냄새는 더더욱 싫어한다. 4년 전 남편이 담배를 끊고 생색을 내며 축하파티를 해달라고 했을 때도 아이들과 함께 백일, 이백일 그리고 일 년이 되던 날에는 케이크 위에 촛불까지 켜놓고 금연하느라 고생한 남편에게 손뼉을 쳐 주었다.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분명 어딘가를 다녀오신 후였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툇마루에 걸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우리 엄마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위축되어 부엌문 뒤에 숨어서 엄마를 지켜보았다. 먼 산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엄마의 한숨소리와 연기가 하나 되어 허공으로 자우룩하게 퍼졌다가 사라졌다. 그날 알았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채우며 우리 여섯 남매를 건사하느라 세상과, 그리고 스스로와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려야만 슬픔과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깊은 한숨을 담은 담배 연기로도 슬픔과 아픔을 토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알 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달라고, 사 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다.

수십 년을 어머니는 담배와 동고동락했다. 어느 날에는 습관처럼 담배를 찾아들었겠지만 어느 날에는 목젖이 아프도록 눈물 대신 담배연기를 삼켰을 것이다.

세상의 대다수 사람은 담배가 유해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통념으로 감히 내 어머니의 담배를 논하고 싶지 않다. 아직도 나는 그 고운 한복을 입고 툇마루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어머니 모습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청상으로 수십 년을 살아내며 어머니가 피운 담배연기와 긴 한숨 속에는 내 몫도 차지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에도 어머니는 가끔 담배를 피우신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처럼 먼 산을 바라보며 긴 한숨 섞인 연기를 허공으로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구십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즐거운 일이 그리 많을까마는 이 세상에 계시는 그날까지 담배를 피우며 한숨 쉴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내일은 담배 한 보루 사들고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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